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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지방2025.04.281. 관동지방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도로 편성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오늘의 서울·경기 일원을 관내도(關內道)라고 하였고, 관동이라는 명칭은 관내도의 동쪽에 위치한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관동 지방은 태백산맥을 경계로 동쪽지방(영동)과 서쪽지방(영서)으로 나누어집니다. 2. 관동팔경 관동지방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를 관동팔경이라고 하는데,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이 포함됩니다. 3. 낙산사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낙산사는 통일신라의...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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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역사 탐구2025.01.281. 고려의 과거제도 고려의 과거 제도는 정종에 이어 즉위한 4대왕인 광종 때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기틀을 확립하기 위하여 창설되었습니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에 의하여 과거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광종시기에 시작된 고려의 과거제도는 제술과, 명경과, 잡과로 나누어졌습니다. 제술과는 한문학으로 관리를 선발하는 것이었고, 명경과는 유교 경전으로, 잡과는 의학, 천문, 음양 지리로써 시험하였습니다. 성종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을 더욱 우대하게 되었습니다. 2. 고려의 토지제도와 조세제도 고려의 토지 제도는 공신들에게 지급하던 ...20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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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의 역사와 문화유산2025.11.141. 낙산사 창건 설화 및 의상대사 낙산사는 671년 신라 문무왕 11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의상대사는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받아들인 후 귀국하여 오봉산 해안 절벽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 낙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화엄사상과 관음사상의 결합을 통한 불교 대중화의 맥락에서 이해되며, 신라 땅에 관음보살의 실재처를 마련하여 신앙인들이 더욱 현실감 있게 관음을 부르고 감응을 기대할 수 있도록 했다. 2. 낙산사 관련 설화와 문화적 의미 낙산사는 원효대사, 승려 조신 등과 관련된 다양한 설화를 담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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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의 역사와 문화유산2025.11.121. 양양의 역사 강원도 양양은 고대 동예의 터전이었으며, 고려시대 현종 때 익령현으로 불렸다. 고종 때 양주군으로 승격되었고, 원종 원년에 양주군으로 개칭되었다. 거란의 침입 당시 거란군의 공격을 잘 방어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양주부로 승격되었다가 태종 13년에 양주도호부로 개편되었고, 태종 16년에 양양도호부가 되었다가 고종 때 양양군으로 개칭되었다. 양양이라는 이름은 중국 호북성 한수연안의 양양과 지형과 자연미가 비슷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2. 낙산사 양양의 대표적인 불교 사찰인 낙산사는 신라시대 고승 의상대사가...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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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궁궐 및 불사건축2025.05.161. 통일신라 궁궐 건축 통일신라 시대에 궁궐 건축이 융성했으며, 문무왕 때 궁궐을 중수하여 매우 장엄하고 화려했다. 안압지와 임해전은 대표적인 궁궐 유적이다. 안압지는 연못의 면적이 15,658m²이며, 임해전은 안압지 호수 중앙에 위치한 5간x4간의 제3건물지이다. 포석정은 곡선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운 한국적 운치를 잘 나타내는 조형물이다. 통일신라 궁궐 건축의 우수성은 출토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2. 통일신라 일반 건축 양식 통일신라 일반 건축 형식은 점차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 시대의 와당과...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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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답사 보고서2025.05.091. 대왕암공원 대왕암공원은 울주군 간절곶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라고 한다. 육지와 대왕암 사이에는 대왕교라는 철제 다리가 있어 푸른 동해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대왕암공원에는 다양한 바위들이 있어 신라 문무왕의 호국룡 전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2. 슬도 등대 슬도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하여 슬도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곳에는 1950년대에 세워진 무인등대가 있으며 아름다운 배경지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3. 장생포 고래문...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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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음악 업적2025.05.071. 율관 제작 세종조의 아악정비는 올바른 율관제작과 악기제조로부터 시작되었다. 1425년 해주에서 율관제작에 필요한 기장을 생산했고, 박연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율관제작에 성공하였다. 1차로 만든 황종율관은 음 높이가 중국 명나라에서 보낸 편경의 황종음보다 높아 실패하였고, 1427년 중국 편경이나 편종을 표준으로 삼아 2차로 황종율관을 제작하였다. 2. 악기 제작 나라에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임시로 세운 관청이 악기도감과 주종소이다. 아악정비를 위한 아악기 제조는 악기감조색이 설치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42...2025.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