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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한국의 독립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2025.11.121.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해방 직후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건국사업을 벌이기 위해 조직한 기구. 여운형 위원장과 안재홍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좌우파가 고루 참여했으며, 8월 15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8월 말까지 145개의 지부가 조직되었고, 정치범 석방, 식량 확보, 치안 유지 등 5가지 주요 과제를 추진했다.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확대 개편되었으며, 지방의 건준 지부는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어 지방정부 역할을 수행했다. 2.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와 미군정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미군은 9월 9일 서울에 진주...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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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인물탐구: 독립운동과 해방 정치2025.11.121. 여운형의 독립운동 여운형은 1918년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당수를 맡았으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고 2.8독립선언에 영향을 미쳤다. 무오독립선언의 촉매제 역할을 하여 3.1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후 외무부 차장으로 선출되었으나, 대한제국황실 우대 문제로 이승만과 함께 반대하며 임정을 떠났다. 1944년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여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 해방 후 정치활동과 좌우합작운동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교섭하여 행정권과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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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과 한국전쟁: 친일파 처단과 학살 사건2025.11.121.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와 친일파 처단 제헌국회는 친일파 처단을 위한 법률 제정을 첫 과제로 삼았다. 1948년 10월 23일 반민특위가 구성되어 1949년 1월부터 박홍식, 최남선, 이광수 등 거물 친일파를 체포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방해와 1949년 6월 6일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으로 친일파 처단은 불가능해졌다. 이로써 1950~1970년대 친일파가 정계, 관료, 군대, 경찰, 경제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2. 농지개혁법과 토지개혁 1949년 4월 농지개혁법이 통과되어 농민은 연평균 생산액의 125%를...202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