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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기행문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뽑는다면, 동양에선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꼽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과거의 기행문이 현재까지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연암 박지원이 쓴 저서 『열하일기』를 통해 해당 의문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연암의 사상과 의견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함으로써 훗날 현대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2. 박지원의 배경
박지원은 18세기 조선의 노론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의 집안은 출세에 유리한 가문이었으며 당시 조선에서는 박지원의 뛰어난 글솜씨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박지원은 누구보다도 관직에 오를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조선시대 보통의 양반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관직에 오르려 하지 않았으며, 조선에서 절대적인 왕명조차도 따르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기인적 행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노론 내부에 여러 당파가 존재했기 때문에 박지원의 집안을 각 당파가 끌어들이려 했다. 이를 본 박지원은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과 관리들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되어 관직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둘째, 박지원과 그의 처가 모두 노론 학통의 명문가이자 청렴한 가문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풍으로 인해 집안은 가난이 떠나지 않았음에도 '청렴'을 영광으로 여기며 가치관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박지원 역시 청렴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어 과거시험에서도 고송과 괴석을 그리며 불합격하는 등 결국 관직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박지원의 청렴함과 사회 개혁을 바라는 마음은 진정한 것이었다. 특히 정조는 그를 높은 벼슬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박지원은 이를 거절한 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갔다. 이처럼 박지원은 집안의 영향을 크게 받아 조선 사회의 보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동시에 실학과 개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3. 『열하일기』
3.1. 청나라 문화와의 만남과 박지원의 실학 정신
3.1.1. 술잔과 진열상태
박지원은 청나라의 술잔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술잔은 한 냥부터 열 냥까지 각각 그 그릇이 다르지만, 모두 놋쇠와 주석으로 만들어져 은처럼 빛을 낸다. 어떤 양의 술을 주문하든 그에 맞는 잔으로 부어 준다. 따라서 술을 사는 사람은 양이 많고 적음을 헤아릴 필요가 없이 간편하게 술을 구매할 수 있다.
박지원은 청나라의 이러한 도량형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는 이처럼 간편한 도량형이 사람들 간의 혼란을 줄여주는 문명의 근본 원리라고 생각했다. 조선의 경우 명확한 단위가 부재했기에, 박지원은 청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조선에서도 이와 같은 간편한 도량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박지원은 청나라의 시장 진열 상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는 청나라의 모든 상품이 단정하고 깨끗하게 진열되어 있으며, 심지어 소외양간이나 돼지우리까지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고 묘사한다. 이를 통해 박지원은 청나라의 생활 문화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평가하며, 이는 실용성과 미학적 가치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박지원은 청나라의 도량형과 진열 문화를 통해 조선 사회의 낙후성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는 이러한 실용적이고 미적인 문화적 요소들이 조선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3.1.2. 목축
조선이 가난한 까닭에 대해 연암은 목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당시 조선은 양을 치지 않았기에 양고기는 먹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조선인들의 겨울 필수품인 털모자를 매년 청나라에서 수입해왔다. 외화의 유출은 오늘날의 정부에서도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다. 더구나 매년 소비하게 되는 온 국민의 생필품이라면, 외화 유출은 특히나 심각한 국가적 문제이다. 그렇기에 박지원은 이러한 사실들을 확실히 꼬집어 조선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조선의 경우 명확한 신분제도 사회였다. 그렇기에 특히나 목축은 천한사람들의 영역이었고 당대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목축에 대해 생각을 하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 인해 무엇보다 필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조선은 목축이란 분야에 대해 전혀 발전 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나라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 상태로 단지 북벌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