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공공의료기관의 필요성과 역할
1.1. 한국 의료의 현실
1.1.1. 코로나19 확산과 감염병전문병원
2015년 메르스(MERS)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는 신종 감염병 대응과 확산방지를 위해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확진환자수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메르스 사태가 또 다시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코로나19의 2차, 3차 확산 같은 대규모 감염병 위기를 대비한 중앙 감염병전문병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신종 감염병의 경우 환자를 격리해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방안이다. 정부는 메르스를 겪으면서 전문인력 부재와 전문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중앙 감염병전문병원과 권역별 3~5곳을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대선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감염병전문병원 설치를 포함시켰지만, 사업추진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대규모 감염병전문병원을 건립한 경험 부족과 부지 선정문제, 예산삭감 등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 음압격리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생활권을 넘어 먼 곳까지 이동해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대비한 중앙 감염병전문병원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감염병전문병원 건립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1.2. 권역외상센터 닥터헬기 운행 재개 문제
경기도 응급의료전용 '닥터헬기'가 앞으로 운행을 재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아주대병원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 의료진이 닥터헬기 탑승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지난해 9월 닥터헬기 운영을 시작했지만, 외상센터 측이 의료진 부족과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탑승을 거부함에 따라 운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외상센터 측은 "닥터헬기에 외상센터 의료진이 탑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사전 협의 없이 운항 재개를 추진했고 인력 충원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상센터 업무와 헬기 탑승을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경기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상센터 등 지원 등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 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 정책개발팀을 '지역외상팀' 또는 '중증외상팀'(가칭·미확정)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인력을 증원하는 등 관련 업무 수행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외상센터 측에서는 여전히 구체적인 추가 채용 계획이 없고, 겨울철 이착륙을 위한 열선 설치나 구조대 대기 공간 확보 등의 인프라도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하였다. 정경원 아주대병원 외상 외과 과장 겸 부교수는 "외상센터에 외상 외과 의사가 하루 장당에 4명, 간호사가 서너명 있어야 하고 외상센터 전담팀과 닥터헬기 전담팀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누가 책임을 지느냐"고 토로하였다.
이처럼 경기도의 닥터헬기 운행 재개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나, 외상센터 측의 의료진 탑승 거부로 당장 재개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도는 관련 인력과 인프라를 충분히 확보하고 외상센터와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마련해야 닥터헬기 운행이 안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1.3. 과잉진료와 과소진료 문제
과잉진료와 과소진료 문제는 한국 의료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과거 갑상선암을 과잉진료한 탓에 수술 후 합병증인 '부갑상선기능저하증'이 덩달아 많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가 대표적인 과잉진료의 사례이다. 가천대 길병원과 이화여대 공동연구팀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국내 갑상선암 발생률과 수술 건수, 수술 후 합병증인 '부갑상선기능저하증' 발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인구 10만 명당 갑상선암 발생률이 2007년 38.3명에서 2012년 73명으로 정점이었고, 2016년 44.1명으로 감소했다. 갑상선 절제술 비율도 2007년 34.8명에서 2012년 70명으로 크게 늘었다가 2016년 22.2명으로 줄었다. 7~8년 전에는 관찰만 해도 되는 매우 작은 갑상선 혹을 수술로 절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과잉진료 논란에 휩싸이자 갑상선암에 대한 진단과 수술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갑상선암 발생과 수술 건수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갑상선암 과잉진단으로 불필요한 갑상선 절제술을 받은 사람이 많았으며, 수술 후 합병증을 앓은 사람도 증가한 점을 국내 빅데이터 연구로 확인한 것이다.
반면, '재활난민'으로 지칭되는 중추신경계 손상으로 인해 영구적 장애를 입은 어린이 재활 환자들은 한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지 못하고 난민처럼 떠돌아다니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과소진료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의료체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보건의료의 특수성을 갖는 '어린이'와 '재활'이 합쳐진 '어린이 재활'은 그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다. 뇌성마비, 자폐성 장애, 지적 장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완치가 불가능한 영구적 장애로써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국립재활원과 세브란스 재활병원을 비롯한 재활의학과가 개설된 대학병원, 종합병원, 병의원 중 극히 일부분에서만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을 보면, 장애아동 중 약 97.5%가 조기 중재, 즉 적절한 개입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와 과소진료의 행태는 저수가-저부담 구조 및 행위별 수가제도로 공적 재원(국민건강보험)이 투입되는 구조에 기인한다.
즉, 민간 의료기관은 수익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은 영역, 특히 재활치료 분야에서 서비스를 축소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공공병원은 수익성 보다는 공공성을 더 중시하므로 이런 분야를 담당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공공병원도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과잉진료와 과소진료 문제는 의료 공공성이 취약한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1.2. 공공의료 확충의 배경과 필요성
1.2.1. 건강보험의 공공성
건강보험의 공공성은 국민 생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의료서비스 제공, 국가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국민 건강 보장, 건강보험이 가지는 외부성과 정보의 비대칭성, 공공재적 성격 등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자본의 힘과 의사 집단의 영향력이 크고, 의료서비스에 내재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의료의 공공성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또한 고착된 저수가-저부담 구조와 행위별 수가제 등의 제도적 문제로 인해 의료 공공성이 저해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 해소와 적정 수가 보상을 통해 보건의료 재정체계를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를 통해 공공의료기관이 적정 수가를 위한 기준이 되도록 하여 국민의 건강권 확보 및 의료 공공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인구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 지출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보장성 강화와 더불어 표준진료 제공,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통해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하며, 이는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1.2.2. 의료자본과 의사집단의 영향력
의료자본과 의사집단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공공성이 취약한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은 의료자본의 힘과 의사 집단의 영향력이 크다. 이는 의료서비스 자체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는 전문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이 높기 때문에 의료공급자인 의사집단과 의료기관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들은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의료기관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로비활동을 펼치는 등 의료공급자 중심의 의료체계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의료공급 체계가 고착화되어 있어, 민간병원들이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수익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제도권 밖에서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영리병원의 증가, 과잉진료 유발, 비급여 항목 확대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의사 집단 내부에서도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문의 수가 증가하고 전문의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들 전문의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는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자본과 의사집단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공공성이 취약한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영향력을 적절히 제어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1.2.3. 저수가-저부담 구조와 행위별 수가제
저수가-저부담 구조와 행위별 수가제는 한국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저수가-저부담 구조는 의료기관들의 수익성을 저하시켜 필수의료서비스 공급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의료기관들은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결국 국민의 의료접근성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기관들로 하여금 비급여 서비스 확대나 과잉진료 유발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의료기관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비급여 서비스를 확대하거나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제공하게 되며, 이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수가-저부담 구조와 행위별 수가제는 국민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공의료 확충과 더불어 이러한 의료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2.4. 인구고령화와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인구고령화와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건강보험 지출 증가가 우려되고 있다.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4.9%로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25년에는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의료비 지출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총진료비는 82조원 규모로, 노인 진료비가 전체의 41.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노인 진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9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