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배드민턴의 역사
1.1. 배드민턴의 기원
배드민턴의 기원은 1820년경 인도 푸나(Poona)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두 사람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양가죽으로 만든 공을 라켓으로 쳐서 서로 주고받는 게임이 행해졌는데, 이것이 차츰 인도 전역에 보급되었다. 이후 1873년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의 한 장교가 이 게임을 본국인 영국으로 가져가게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전해진 이 게임은 그루스터셔주의 배드민턴에 거주하던 뷰 포드 경의 저택에서 여가 활동으로 즐겨 행해졌고, 이때부터 '배드민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귀족들의 스포츠로 자리 잡은 배드민턴은 매너와 품위를 중요하게 여기며 발전해 나갔다.
1.2. 배드민턴의 전파와 보급
배드민턴의 전파와 보급은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873년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 장교가 귀국 후 영국 서부지방의 배드민턴에서 여가 활동으로 배드민턴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후 1893년 영국 배드민턴 협회가 조직되어 배드민턴 규칙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발전된 배드민턴은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전해졌다. 1899년 최초의 전영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1934년 국제 배드민턴 연합이 조직되면서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다. 1939년에는 토마스 컵 대회가, 1948년에는 유버 컵 대회가 개최되며 국제 대회가 활성화되었다. 1977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시작되어 2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배드민턴이 보급된 것은 1945년 이후로, YMCA를 통해 레크리에이션적 성격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셔틀콕이 비닐로 만들어져 운동효과가 낮아 크게 보급되지 않았다. 이후 6·25전쟁 당시 외국군의 영향으로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고, 1957년 11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조직되면서 본격적인 보급이 이루어졌다. 1962년에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로 인정되었고, 1964년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발전해왔다.
1.3.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발전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발전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배드민턴이 우리나라에 보급된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며, YMCA를 통해 레크리에이션적 성격의 스포츠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비닐로 만든 셔틀콕 사용으로 인해 운동 효과가 적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6.25 전쟁 당시 외국군들이 주둔하면서 야외에서 배드민턴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이후 점차 라켓과 셔틀콕 등의 용품이 보급되면서 배드민턴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57년 11월에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조직되어 배드민턴을 일반에 널리 홍보하였고, 1962년 1월 대한체육회 정식 산하단체로 인정받으며 배드민턴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1981년 황신애 선수가 전 영국 오픈 배드민턴 선수권을 제패하면서 한국 배드민턴의 세계적 도약을 예고했다. 이어서 1980년대 후반부터 김문수-박주봉, 정명희-황혜영, 길영아-정소영 등의 복식 조가 잇달아 세계 정상에 올랐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방수현 선수의 여자 단식 금메달과 김동문-길영아 조의 혼합복식 금메달은 한국 배드민턴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김동문-하태권이 남자복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이 남자복식의 강국임을 각인시켰다. 이처럼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배드민턴은 세계 정상을 휩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