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최근 20여 년간 서구 역사학계에서는 '과학적 역사'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객관주의가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역사연구의 전문화 과정의 핵심을 이루었던 것은 역사학의 과학적 위상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리하여 역사가들은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식과 객관적 실재는 일치한다는 진리대응설에 입각하여 과거를 "그것이 실제 일어났던 대로" 구성하고자 하였다. 20세기 후반 근대적 경제성장의 부정적인 측면과 유태인 학살이 몰고 온 충격은 문명화가 가져온 파괴와 근대적 과학관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시각이 사회전반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으로 근대사회에서 형성된 이류사회의 발전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게 하였고,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각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시각은 근대적 성향 특히 민족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던 한국사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학계의 영향은 자연스럽게 역사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갔다. 역사학의 사실적 역사가 있을수 없는 것으로 당시에 대한 담론일 뿐이며 이는 획일적인 역사교육으로 일관하던 근대역사교육의 여러 방향의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본고에서는 포스트모던 역사인식을 통해서 본 한국역사학 및 역사교육과 관련한 주요 논점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2.1.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특징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후기모더니즘)은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이다. 2차 세계대전 및 여성운동, 학생운동, 흑인민권운동과 구조주의 이후에 일어난 해체현상의 영향을 받았다. 탈중심 사고, 탈이성적 사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1960년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용어 자체가 역사학적 구분에서의 근현대에 스쳐간 수많은 것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학자, 지식인, 역사가 사이에서 그 정의를 두고 극한 논쟁이 일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던적 생각이 철학, 예술, 비판 이론, 문학, 건축, 디자인, 마케팅/비지니스, 역사해석,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