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18세기 서양문학 고전
1.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1.1. 당시 사람들의 열광과 작품의 영향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 독일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괴테는 시민계급 출신으로 궁정의 화려하고 값비싼 옷이 아닌 실용적이고 간소한 시민 의상을 주로 입었으며 이러한 삶의 방식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베르테르는 주로 파란색 연미복에 노란색 바지 그리고 갈색 줄이 달린 부츠를 신었다. 주인공의 이러한 착장은 당시 시대정신을 투영하며 시민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과 호감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베르테르의 착장은 소설을 벗어나 당시 남성들의 패션이 되었으며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옷이 되기도 하였다. 소설에 대한 열풍은 일반 시민에게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유명인인 프랑스 출신의 나폴레옹, 독일의 작곡가인 브람스에게도 미치게 된다. 특히 나폴레옹은 괴테가 존경하는 사람인데, 당시 나폴레옹은 이집트로 가는 여정 중에 괴테의 책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며 이 작품을 7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 후 나폴레옹은 괴테와의 만남을 주선하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고 말하며 자신은 죽어서 사라지지만 괴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당시 브람스는 괴테와 같은 독일 출신이며 작곡가이다. 그는 괴테에 소설에 이입하여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약 20년에 걸쳐 『베르테르 4중주』로 남겼다. 또한 출판업자에게 악보 표지에 베르테르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삽입해달라고 의뢰하기도 하였다. 소설의 내용을 소재로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문학작품 속 내용을 현실에서 이벤트화 하는 베르테르 열풍으로 인해 주인공 베르테르와 로테의 이미지가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중국 도자기 기술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만든 독일 동부의 마이센 도자기에는 베르테르가 산책하거나 서 있는 모습을 새겨놓았으며 이를 애장품으로 간직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베르테르와 관련된 향수 등의 여러 파생품이 출시되었다.
1.1.2. 괴테의 생애와 작품 세계
괴테는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율리우스 히르만 괴테로 학자이자 법률가였고, 어머니 카트라리나는 당대 대표적인 여성 작가였다. 괴테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재능을 보였으며,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루터교파 가정에서 자랐으나 종교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률고시에 합격했으나 실제로는 문학과 예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772년 「골든 개」라는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이 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파우스트」(1806-1832), 「빌헬름 마이스터」(1796)와 같은 대표작들을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의 대표작으로,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18세기 독일 문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다.
괴테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자신을 시민계급 출신으로 여기며 귀족적인 삶보다는 시민들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에게 잘 반영되어 있다. 베르테르는 당시 유행했던 기사소설의 주인공과는 대조적으로 보통 시민 출신으로 그려지며, 자연을 사랑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
괴테는 문학 외에도 철학, 자연과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지적 탐구를 펼쳤다. 그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정치와 행정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자연과학의 연구에 힘써 식물학, 광물학, 해부학 등의 분야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괴테는 1832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문학 활동은 18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업적으로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