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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 시대
1.1. 알렉산더 대왕의 삶과 업적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립포스 2세와 에페로스의 공주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푸른 눈과 검은 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또한 그는 역사적 위인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물결치는 곱슬머리와 꿈꾸는 듯한 둥근 눈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왕가의 자손답게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 세계의 최고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리스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철학, 역사 등의 많은 지식을 전달받은 알렉산더는 성장 후에 훌륭한 전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의 면모도 가지게 된다.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의 군제개혁을 단행한 인물로, 알렉산더는 아버지와 함께 마케도니아의 군제체계를 완성해 나갔다. 이렇게 확보한 마케도니아의 전문병 체계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에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필립포스 2세는 페르시아 원정 계획을 가지고 준비해나가던 중 갑작스럽게 살해당하게 되고, 알렉산더는 20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아버지가 가졌던 뜻을 혼자 이루어 나간다.
그는 강력한 군대체계를 가지고 10년간의 세계원정을 착수하게 되는데 이 원정경로는 지구 한 바퀴에 해당하는 약 35000km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BC 334년에서 330년까지 페르시아 원정을 통해 페르시아를 먼저 장악하고 이어 동진을 계속하며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북부까지 정복을 이어 나갔다.
알렉산더는 BC 334년, 3만 5천의 병력을 가지고 페르시아로 진군하게 된다. 그는 보급로를 두지 않고 속절속결로 승리를 이끄는 전략을 통해 페르시아의 해안 거점(티레)을 하나씩 빠르게 점령해 나갔다. 그리고 BC 333년 이소스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에게 승리를 거두고, 적장이었던 맴논에게서도 승리하게 된다.
그 후에는 이집트로 가게 되는데, 이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이유와 정치적/심리적 정당성을 얻고자하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알렉산더는 아몬신전의 사제를 통해 자신을 신의 아들로 선포하고 파라오가 되었다. 또한 필립포스 2세의 살해범이 합당한 징벌을 받으면서, 선왕의 죽음 이후부터 시달려왔던 연루설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치적 정당성을 완성시켰다.
이집트를 장악한 후 페르시아로 다시 방향을 돌려, BC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를 기점으로 페르시아를 완전하게 정복한다. 또한 고대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바빌론, 페르세폴리스까지 장악하여 아테네 제국의 300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보화를 획득하고 페르세폴리스를 완전히 파괴해버린다. 그런 이후 부와 번영의 도시였던 바빌론을 새로운 제국의 중심지로 선택한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후 그는 아프가니스탄, 우주베키스탄 등을 정복하고 인도를 향해 나아간다. 이 원정 경로를 따라 알렉산더의 군사들은 '알렉산더의 도시'라는 뜻의,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다. 이렇게 건설된 알렉산드리아는 새로운 제국 내의 정복도시로서 제국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게 되고 그리스인들이 이주해오면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는 번성하고 확대된다.
그러나 원정 후반에 다다르면 무리한 일정과 내부의 분열, 알렉산더의 개인적 문제 등으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는 알렉산더가 BC 328년에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부왕 때부터 신하로 일해 온 클레이토스를 살해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언쟁 과정에서 흥분한 알렉산더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클레이토스를 죽이게 되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군대 내 자유로운 발언과 민주적 결정과정이 사라진다. 또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적국이었던 박트리아의 공주 록사나와 결혼하여 후계구도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도 원정 과정인 카이베르 고개를 넘던 중 병사들이 극심한 피로감으로 전진을 거부하는 등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된다. 이에 알렉산더의 개인적 문제까지 겹쳐, 그의 마지막 시기는 여러 가지 이상증세로 술과 성애, 그리고 폭력으로 가득 차게 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한 삶을 보냈다.
그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사건은 BC 324년에 그의 사랑하는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의 사망사건이다. 이로 인해 알렉산더는 큰 충격을 받고, 의학의 신 신전을 파괴하는 등의 난동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알렉산더는 BC 323년 6월, 이름 모를 열병에 시달리다 돌아오던 중 바빌론에서 사망하게 된다.
위대한 업적과 함께 잔혹한 면모를 동시에 갖춘 알렉산더는 그의 삶과 죽음에 걸쳐 헬레니즘 세계를 형성하고 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1.2.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
1.2.1. 개인주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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