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동강의 가치와 보존
1.1. 동강의 문화적 가치
1.1.1. 선사시대 유적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은 동강 상류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있다. 현재 동강 유역에는 모두 10여기 정도의 고인돌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 훼손되었고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고성리, 덕천리에 각각 남아 있는 3기의 고인돌 만이 비교적 쉽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고인돌들은 선사시대 동강 유역에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영월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았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1.2. 삼국시대 산성
동강 유역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역이었던 관계로 여러 개의 산성이 축조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산성으로는 고성리산성, 완택산성 등이 있다.
고성리산성은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고구려가 남진을 하면서 전초기지나 후방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해발 425m가 되는 산을 띠를 두른 듯이 쌓은 테뫼형 산성으로, 북쪽과 동쪽을 향한 성곽이 원형에 가깝게 보수되었지만 남쪽과 남서쪽을 향한 성곽은 대부분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성 위에서 동강의 상류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연의 요새라고 할 수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고성산성제를 열어 성곽 보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완택산성은 영월읍 삼옥리 작골 동쪽 해발 916.1m의 완택산 정상부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3,477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의 3면은 절벽으로 되어있어 자연적인 요새를 이루고 있다. 정상 남쪽 8부 능선에서 내려다보면 동강 하류역과 영월읍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성 주변에는 토성의 흔적과 분지가 있어 요새와 본영지로 추정된다.
이처럼 동강 유역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곳에 다수의 산성들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삼국시대 산성들은 동강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1.1.3. 조선시대 문화유산
조선시대에는 동강 주변 지역에 다양한 문화유산이 조성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금강정(錦江亭), 낙화암과 민충사를 들 수 있다.
금강정은 조선시대의 정자로, 강원도 문화재자료 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종 10년(1428년) 군수 김복항(金福恒)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군수 이자삼(李子三)이 절벽 아래로 흐르는 금장강(錦障江)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신의 돈을 들여 정자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익공양식 건물로 팔작지붕에 모로단청을 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금강정 주변으로는 봄철 벚꽃이 만발하여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낙화암은 단종이 승하한 후 단종을 모시던 궁녀들과 시종이 이곳에서 순절한 곳이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이 관풍헌(觀豊軒)에서 승하하자 궁녀 자개(者介), 궁비 불덕(佛德), 관비 아가지(阿加之), 무녀 용안(龍眼), 내은덕(內隱德), 덕비(德非) 등 6명과 시종 1명이 이곳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고 한다. 이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고 하여 낙화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낙화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