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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의 이해
1.1. 사고하는 인간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므로 인간의 사고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원효대사의 "일심사상"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일이 나로 인해 결정된다는 관점에서, 인문학은 움직이는 대상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세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인간에게 관심을 가진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강조한 바와 같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세계관과 가치관 등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제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은 철학자가 자기 자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단점과 고통을 긍정적인 반응으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인문학은 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모든 사람의 관심이 인간다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의 현실에 나가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인간다움의 상실을 보여준다. 고통이 없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란 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2. 이상과 현실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제자) "konwledge is recolletion" = "지식은 새롭게 배워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산파법) 「menon」 中 전이해? 어떤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잘 알려준다.(전체와 개체 / 만물은 전체적인 원리와 후체적인 원리가 공존한다 / 모든 만물을 이해할 때 전체적인 방법에서 구체적인 방법에서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이원론적 사고)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통해 세상을 이원론적 관점으로 보는 구조가 발달하게 되었다."
=> 전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이것을 인간의 사고의 모든 구조로 설명함)
1. 삼단논법(deduction) = 연역법 : 전체적인 주제를 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
2. 귀납법(induction) : 구체적인 것을 통해 전체적인 것을 설명한다.
3. 역설법(paradox) : 전체와 개체가 팽팽하게 대립
4. 변증법(dialectic) : 전체와 개체가 타협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의 제자) : 현실의 길을 선택 = 이데올로기 / 보수적인 이념
플라톤의 철인국가 "정의로운 이상 국가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 왜 이런 주장을 하였는가? 당시 전쟁을 겪은 플라톤의 경험을 통해 나왔다.
1.3. 참 가치의 발견
플라톤은 철학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인식하고 있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통해 진정한 진리와 선의 실체를 찾고자 했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데아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았다. 플라톤은 이상향인 철인국가를 제시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되기란 쉽지 않았다. 이처럼 플라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현실에 좀 더 주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데아)과 질료의 결합을 통해 구체적인 사물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보편적인 이상보다는 개별적인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행위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보았는데, 이때의 행복은 이데아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도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추구했지만,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는 '중용'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양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중간을 추구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기존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스토아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보았다. 즉, 자연의 질서와 이치에 따라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토아학파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도 현실과 이상을 완전히 조화시키지는 못했다. 스토아학파의 근본적인 입장은 현실을 초월하여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모두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이 갈등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이상적 세계인 이데아에 주목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좀 더 주목했으며, 스토아학파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처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은 서양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주제로 다뤄져 왔다고 할 수 있다.
1.4. 생명과 죽음
시간은 인간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다.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만 깊게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죽음에 배제되어 있는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센트룀(유럽)에서는 공원 같은 무덤이 있는데, 이는 공원이 무덤이 되고 무덤이 공원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삶 안에 스며들어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화철학' 저자는 문화와 문명의 위기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없으면 온다고 말한다. 인간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그 죽음에 관한 의미를 모르고 산다면 가치관이 왜곡되어 버린다. 진정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명과 문화의 위기가 온다고 보았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죽음에 관하여 어릴때부터 교육한다. 즉, 'well-being'이 아니라 'well-dying'을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출발점이자 기초이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알고, 죽음을 수용하며, 올바른 삶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생명을 사랑하는 Biophilia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사랑하는 Necrophilia이다. 전자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판단되고, 후자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본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는 Necrophilia형의 인간을 계속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사회가 개인을 그러한 분위기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의미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죽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 자연적인 차원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행동을 통해 표현될 때, 선과 악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도덕적 감정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정념을 억누르고 무정념의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도덕성을 갖추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역사 속에서 인간은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져왔다. 초기에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다가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5. 정체성과 세계관
과거 중세 시대에는 신(神)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했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점차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확산되었다. 이는 정체성과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 것이다.
중세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신중심적 세계관은 모든 존재와 현상을 신의 섭리와 지배 아래에 둔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은 신앙과 교회에 종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확산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자아 실현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개인의 정체성은 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인간 중심주의를 주장했다.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은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며 기존의 신중심적 세계관에 도전했다. 이들은 개인의 능력과 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더욱 강조되었다. 홉스와 로크 등 사회계약론자들은 개인의 자연권을 주장하며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신이 아닌 이성적 주체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감성과 개성이 강조되면서 개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워즈워스, 콜리지 등 낭만주의 작가들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신적 해방을 추구했으며, 이는 개인 정체성의 새로운 양상을 드러낸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며 개인 정체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나타났다. 보르헤스, 마르케스 등은 개인의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확산과 더불어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도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신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