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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릴열도 분쟁 개요
1.1. 제정 러시아의 영토 팽창
제정 러시아는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키예프 공국이 몰락한 이후, 스웨덴, 독일, 폴란드 등 인접국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건설하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영토 팽창 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3세와 바실리 3세 시기에는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슬라브 국가들을 통일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로마노프 왕조 시기에는 민간 차원에서도 탐험활동과 토지 확장 정책이 추진되었다.
1689년 청나라는 러시아의 동진에 대비하기 위해 네르친스크조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1696년 러시아는 캄차카반도와 쿠릴열도를 점령하며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이어 1875년에는 일본과의 협상에서 사할린 섬을 할양받는 대가로 쿠릴열도를 양도하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쿠릴열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2. 러일전쟁과 쿠릴열도
1855년 일본과 러시아는 러일 화친조약에 의해 일본의 북방 국경을 이투루프와 우루프섬 사이로 정하고 사할린은 양국의 공동 거주지로 삼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1875년, 사할린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쿠릴열도 전체의 소유권을 거래하는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는 사할린 섬을, 일본은 쿠릴열도 전체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를 제압한 후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가졌던 북위 50° 이상의 사할린까지 수중에 넣었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미국에 패망했으며 소련은 얄타 회담에서의 약속대로 쿠릴 열도를 할양받게 되었다.
이후 1950년대에 일본은 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의 반환을 요구했으며 1956년 소련과 일본의 평화조약에 따라 하보마이와 시코탄 섬을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하였으나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자 소련은 이에 반발하며 영토 반환 체결을 거부하며 협상이 결렬되었다. 일본은 이 섬들을 북방영토라 부르며 훗카이도 현의 네무로 구의 일부라 주장하고 있으나, 현재 남 쿠릴섬 4개 도서는 러시아의 관할권 하에 있다.
1.3. 쿠릴열도 귀속 협상 일지
쿠릴열도 귀속 협상 일지는 다음과 같다.
소련은 일본의 쿠릴열도 북방 4개 도서에 대한 반환을 줄곧 무시해 왔으나 러시아가 1990년대 후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일본의 경제원조 및 현지 개발 협력을 얻기 위해 4개 도서 반환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2004년과 2006년에는 푸틴이 일본이 4개의 도서 중,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경우, 최남단의 시코탄과 하보마이 섬을 돌려줄 의향이 있음을 밝혔으나 해결되지 못하였다.
2010년에는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쿠릴 열도에 방문하였고, 2011년에는 쿠릴 열도에 최신 대함대공 미사일을 비롯하여 공격용 헬기 등 신형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013년에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이투루프 섬을 제외한 3개 도서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러시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 아베 신조가 러시아를 방문하여 쿠릴 열도 반환 협상 재개를 선언하였으며 이때 2개 및 3개의 섬 반환을 조건으로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음을 밝혔으나 러시아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2014년에 러시아 정부는 2016년까지 쿠릴 열도 남단의 섬 두 곳인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에 150개 이상의 군사 시설을 신축, 정비할 예정임을 밝혔으며 이듬해에는 이투루프 섬에 신 공항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2016년에 쿠릴열도 반환 문제를 주제로 러시아와 일본의 회담이 이루어졌으나 경제 협력을 골자로 하는 사안에는 의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