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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종교개혁 연구의 배경
종교개혁 연구의 배경은 중세 말의 사상적, 역사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종교개혁 연구는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세 말기의 상황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중세 말기는 신학적, 사상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시기였다. 스콜라 철학과 인문주의가 대두되면서 기존의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종교개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중세 교회의 타락상도 종교개혁의 배경이 되었다. 교황 권력의 남용, 성직자들의 부패, 교회의 세속화 등으로 교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요구가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루터를 필두로 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근래의 종교개혁 연구는 이러한 중세 말기의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종교개혁을 단순히 교리적 차이로 본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종교개혁이 발생한 시대적 맥락과 그 영향을 함께 고려하여 종교개혁을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종교개혁 연구는 중세 말기의 다양한 사상적, 역사적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종교개혁의 의미와 영향력을 보다 종합적이고 심도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1.2. 칼빈과 어거스틴 연구의 필요성
칼빈과 어거스틴 연구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칼빈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부 어거스틴과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칼빈의 사상을 예정론을 중심으로 어거스틴과 비교하는 연구들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 사상을 중심으로 칼빈과 어거스틴을 비교 연구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사상적 발전에 어거스틴의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칼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거스틴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칼빈의 작품들에는 어거스틴에 대한 인용과 그의 사상의 영향이 다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칼빈의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거스틴을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어거스틴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칼빈의 연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거스틴이 활동했던 4~5세기와 칼빈이 활동했던 16세기는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른데, 이를 고려하여 어거스틴의 사상을 재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두 사상가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어거스틴과 칼빈은 각자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사와 신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들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관점을 비교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21세기 아시아, 특히 한국 기독교회의 정체성 수립에 있어서 작은 교회사적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 한국교회가 당면한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칼빈과 어거스틴의 통찰이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어거스틴의 사상
2.1. 북아프리카 교회의 영성
4세기 북아프리카는 가톨릭교회와 도나티스트 교회로 크게 나뉘어 발전하고 있었다. 이 두 교회들은 모두 성경에 의해서 감동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영성과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다.
도나티스트 교회의 선택받은 공동체적 영성은 박해시에는 성경중심의 선택받은 공동체적 영성(새 이스라엘)이었고, 평화시에는 기관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4세기 북아프리카 교회의 발전과 영성을 고찰할 때, 그것과 어거스틴과의 연결성을 연구하기 위하여, 도나티스트의 영적 개혁자인 티코니우스에게 주목해야 한다. 그는 도나티즘의 신학과 영성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로 평가될 수 있다.
티코니우스의 영성은 도나티스트 운동을 하나의 기독교적 운동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티코니우스가 도나티스트 주의자들에 의해서 출교됨으로 도나티스트 교회 운동의 영성은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티코니우스의 성경 해석과 혼합된 교회론과 종말론으로부터 천년왕국주의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니교를 넘어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전망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4세기 북아프리카 교회의 영성을 종합하는 커다란 영적 저수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2. 어거스틴의 교회론
어거스틴의 교회론은 예언적 성취로서의 교회관을 중심으로 정립되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상의 상속이자 소유였으며, 그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으로 이해하며, 교회가 성령에 의해 감동되고 유지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다. 특히 사울이 교회를 핍박했을 때, 이는 곧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박해였다고 설명하였다.
어거스틴은 성령이 교회와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보았는데,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조성하고 생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일치에 대해 강조하였는데, 교회의 구성원들이 다양하더라도 영혼은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전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보편 교회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어거스틴은 교회의 성례를 연합의 연대를 위한 가시적인 상징으로 보았으며, 성례에 참여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거룩한 자들과 죄인들이 세상의 종말까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혼합된 교회라고 이해하였다.
이처럼 어거스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