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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사일런스(마틴 스콜세지), 부제 : 신앙 : 확실한 믿음의 증거 Ⅰ. 들어가며
사일런스는 그 유명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영화화한 본작이다. 이는 약한 인간이 신과의 대화를 시도한 역사이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28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도출한 신앙이라는 것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고,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본을 다시 묻는 영구 불변한 주제이다. 단언하자면,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종교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그 증거에 대해, 본작에서는 굳이 시대 배경에 대한 설명은 하고있지 않다. 성경의 인용문이나 용어 등도 영화에서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기에, 이 영화는 역사나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인 물음을 던지고자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위 영화는 역사나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관계없이,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을 크게 흔드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의 처참한 세계.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혹은 신과의 대화 속에서 찾아내는 것.... 그것은 바로 '침묵'이었다.
2. 소설 '침묵'의 역사적 배경
2.1. 종교 소설 '침묵'의 역사적 배경
종교 소설 '침묵'의 역사적 배경은 16-17세기의 일본 기독교 박해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549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일본에 첫 상륙하면서 본격적인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은 무역의 이익을 얻기 위해 기독교 포교를 허용하였으나, 점차 기독교가 정치·사회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기독교 탄압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반텐렌(선교사) 추방령을 내리면서 일본 최초의 기독교 탄압을 시작하였다. 히데요시는 기독교 세력의 성장을 경계하였는데, 당시 규슈의 다이묘 타카야마가 외국인의 후원을 받아 정치·군사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히데요시는 그를 제거하는 등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에도 기독교 탄압을 이용하였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 하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탄압 정책이 지속되었다. 1614년 이에야스는 모든 가톨릭 선교사를 해외로 추방하고 신자들을 체포하거나 배교를 강요하는 등 보다 강력한 탄압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 신자들은 산으로, 섬으로 숨어들어가 신앙을 지켜나가게 되었는데, 이들을 "기리시탄"이라 불렀다.
이에미스 장군 집권 이후에는 더욱 가혹한 기독교 박해가 이루어졌다. 이에미스는 철저한 박해 정책을 펼쳐 신도들에 대한 재산압류, 고문, 처형 등을 단행하였고, 1627-1628년 시마바라 지역에서는 약 35,000명의 기독교도가 난을 일으켜 무참히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16-17세기 일본에서는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막부가 기독교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 정책을 펼쳤으며, 이는 곧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의 중심 사건과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2. 정치적 배경
에도 막부 시대의 정치적 배경은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인물의 연속된 활약으로 통일된 막부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에도에 정착한 막부는 막번 체제를 통해 봉건제를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하였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쇼군이 휘하의 다이묘들을 통제하면서 정권을 다잡았다. 쇼군은 산킨고타이 제도, 일국일성령 등을 통해 다이묘를 통제하였고 지샤부교를 통해 사원세력과 종교에 대한 통제도 엄격히 하였다. 이처럼 도쿠가와 정권은 중앙집권적 봉건체제를 바탕으로 정권을 안정화시키고자 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2.3. 사회적 배경
사회적 배경에 있어서는 당시 일본 사회의 신분 질서와 문화적 특징들이 기독교 포교와 박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상공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조닌 계층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은 다이묘 료고쿠의 발달에 따른 조카마치를 형성하며 부를 축적하였고, 이에 따라 도시가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사를 중심으로 한 지배계층과 천민계층과의 신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특히 에타, 히닌 등의 천민계층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천국이 있다는 교리에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것은 막부 정권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오랜 전통을 지닌 불교와 토속 신앙이 일본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구의 문화인 가톨릭이 이를 쉽게 대체하기 어려웠다. 즉, 일본 고유의 종교와 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져 있었던 상황에서 외래의 종교인 가톨릭이 토착화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