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나라에게 주는 교훈"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세계의 정치와 경제
1.1. 평화와 전쟁
1.2. 세계시민의 연대와 공동행동
1.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4. 리비아의 핵 포기 사례
1.5.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핵 포기 사례
1.6.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 포기 사례
1.7. 우크라이나 핵 포기 과정
1.8.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
1.9. 북한의 실제 핵 능력
1.10.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기술 거래
1.11.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전제조건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세계의 정치와 경제
1.1. 평화와 전쟁
인간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까운 과거인 20세기만 하더라도 1,2차 세계대전과 이후 냉전으로 인한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현대의 군사무기의 발전은 군인과 민간인 모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한다. 특히 민간인의 희생이 크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국가 간 통합과 집단 연대가 강화되고 과학기술의 발전계기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20세기에 이어진 냉전과 열전의 유산은 21세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 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의 테러 등 수많은 피해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프로이트는 전쟁의 원인을 인간의 죽음 본능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전쟁을 인간의 모순된 두 본성 중에서 찾을 수 있다면 평화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 사회의 소속감과 이웃 집단의 배타성과 적대성이 전쟁으로 연결되며 국가 체제 간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국제체제의 무정부성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견해도 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견제하며 세력의 균형을 유지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으나 냉전으로 인한 한반도와 베트남 등지에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세력균형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강대국 중심의 발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탈냉전 이후에도 전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아 세력전이도 전쟁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평화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여러 경로가 제안되고 있다. 첫째, 경제적 자유주의이다. 국가 간의 경제적 교유확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 서구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적 자유주의이다. 그러나 민주평화론의 현실 적용이 평화를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점목될 수 있으므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세 번째 국제제도 건설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제도적 자유주의이다. 평화연구자들이 제시하는 비도발적 방어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인식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실현 가능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 시각에서는 비도발적 방어 역시 힘을 통한 평화추구방법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공감, 비폭력, 창조성 등을 통한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평화의 길을 도모해야만 한다.
1.2. 세계시민의 연대와 공동행동
앙리 뒤낭이 전장의 부상자들을 돌보는 단체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이 제네바 협약은 근대 질서의 가장 중요한 규범 중 하나로 여겨진다. 피네모어와 시킨키는 국제 질서가 규정짓고 규범이 제안 정착되는 것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였는데 첫째는 규범의 제안단계이다. 앙리 뒤낭처럼 규범을 제안한 주창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규범에 대한 동의가 확산되어 제도화 되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규범이 제도화되고 하나의 가치이자 태도로 완전히 내면화 되는 단계이다. 대인지뢰협약은 이러한 모델을 따른 협약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국제활동이 만개한 시기라고 할 수 있고, 그 중심에는 UN이 있었다.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얻은 교훈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한 번 더 지구적 수준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류가 종말될 것이므로 이를 막아야만 하고, 둘째는 전쟁의 배경이 된 경제위기를 지구적 차원에서 조절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UN은 출범 초기부터 결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IMF와 세계은행이 유엔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자적 기구라는 점, 냉전시대에 유엔이 소련과 미국으로 구분되는 이데올로기 토론장으로 변질되며 이후 1960년대 신생독립국들이 대거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미국이 유엔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으로 변화한 점이다. UN이 새로운 다자주의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진행하였던 국제질서의 창출은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세계 경제위기와 식량위기,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잡은 인권과 환경 문제 역시 한계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긔 외교 정책은 9.11사태 이후 더욱 강화되었고 유엔은 이러한 미국에 대한 적극적 중재를 하지 못하면서 국제질서 역시 보편적인 것이 아닌 미국 예외주의에 기초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국재규범에 대한 정치적 쟁점화도 문제가 되었다. 세계화의 진전과 위기의 심화도 UN의 손을 벗어난 일이 되었고, 초국적기업들이 등장하며 지구경제를 좌우하고 인권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이에 대응한 국제 규범은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
참고 자료
김윤태 외, 『세계의 정치와 경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7.
조영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원하는가」, 매일경제, 2022.03.15.
이문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잃은 가장 중요한 것」, 프레시안, 2022.04.6.
세계의역사,박구병, 신성곤, 원지연, 윤혜영, 이광수, 이한규, 이혜령, 이희수, 조흥국 지음,2017년 02월 01일
-한국의 핵 공학자 1호 신성택 박사
-미셀 리스 [당시 미 국무부 정책실장]
-애쉬튼 카터 [당시 미 국방부 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당시 미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
-레오나드 크라프추크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레오니트 쿠치마 [당시 우크라이나 총리]
-아나톨리 즐렌코 [당시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드미트리 [당시 우크라이나 외교위원장]
-로제 괴테밀러 /전 미 백악관 안보위원회(NSC)국장
-콘스탄틴 그리센코 /당시 우크라이나 외교부 핵해체 국장(91~94년)
- 한스블릭스(前 IAEA 사무총장, 94년 북핵사찰 단장)
- 미첼 리스(前 미 국무부 정책실장)
- 로버트 아인혼(前 미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보)
- 죠엘 위트(現 국제 전략연구센터 북한 전문가, 북한 15회 방문)
-브루스 버넷(랜드 연구소 한반도 군사력 전문가)
- 샐리그 해리슨(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
- 북한 핵실험 이후 평양을 방문, 북한 핵 과학자들을 만난 세계 최고의 북핵 전문 과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미국의 초기 핵개발을 맡았던 로스 알라모스 국립핵연구소 前 소장),
- 프랭크 본 히펠(프린스턴 대학)교수,
- 애쉬턴 카터(前 미 국방차관보), 죠셉 나이(前 미 국방 차관보)
- 찰스 프리처드(前 북핵 담당 대사)
- 페로즈 칸(파키스탄이 핵 개발을 했던 1990년대 파키스탄 군부의 핵개발
책임자이자 무샤라프 파키스탄 현 대통령의 오른팔인 예비역 중장),
- 후세인 하카니(파키스탄이 핵개발을 하던 시기, 부토 수상의 특별보좌역)
- 무샤히드 후사인(현 파키스탄 국회 외교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