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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 바울의 삶과 신학
1.1. 저자 소개
저자 이종원 교수는 현재 숭실대학교 겸임교수로 베어드학부대학에서 기독교 교양과목과 기독교학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현직 교수이다. 그는 숭실대학교 철학과, 장로회신학대학원,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기독교윤리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기독교 생명윤리' 외에도 '성서다시보기(공저, 숭실대학교 출판부)', '기독교 윤리로 보는 현대사회(북코리아)' 역서로는 '히포크라테스와 생명윤리(북코리아)' 등이 있다.
1.2. 바울과 예루살렘 공의회, 그리고 안디옥 사건
바울과 예루살렘 공의회, 그리고 안디옥 사건은 바울의 생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 방문은 회심 후 3년 만에 게바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던 것으로, 이 때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두 번째 방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 만나 이방인 선교와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했던 것으로, 이는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와 관련이 깊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구원과 율법 준수 여부를 둘러싸고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벌어진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였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바울은 율법 준수 없이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공의회를 열어 협의하기로 했다.
공의회에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이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단, 우상의 제물과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는 멀리하라는 몇 가지 규정은 지켜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이방인 선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얼마 후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베드로 간의 갈등이 일어났다.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을 방문하자,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더 이상 식사를 함께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바울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는데, 이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사도 간의 공개적인 대립 사건이다.
바울은 베드로의 행동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받는다는 복음 진리를 고수했다. 이 사건은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 간의 긴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온전히 전념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바울의 생애에서 예루살렘 공의회와 안디옥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자신의 복음 메시지를 확립했고,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곧 바울이 전한 보편적인 복음이 성공적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3. 바울과 유대교
역사적 문맥에서 볼 때, 바울은 주후 1세기라는 극심한 격변기와 혼란기에 출생하여 활동했다고 볼 수 있다. 종교-문화적으로는 헬라-로마의 이교도의 종교 및 문화가 유대인들의 삶이며 문화이자 종교였던 유대교에 침투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저항이 점점 고조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바울은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이교도 문화와 종교에 맞서서 순수한 유대교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정통 바리새파 랍비 교육을 받았다.
바울은 랍비 교육을 마치고 유대 사회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 나설 무렵, 나사렛 출신 예수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 운동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초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바울은 "나사렛 예수를 추종하는 초대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로 확신하고 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이는 바울이 신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기 전까지의 모습이다. 회심 이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다.
이처럼 바울은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르침 속에서 자랐지만, 회심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서신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구약 성경과 유대교의 전통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복음 안에서 이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1.4. 바울 서신에 대한 일반적인 개관
바울 서신에 대한 일반적인 개관"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 순전히 객관적인 역사를 위해 쓰여진 서신을 남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여 직접 개척했거나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는 개인이나 교회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쓰여진 목회적이고, 선교적이고, 신학적인 서신들이다. 이 점에서 누가의 사도행전도 예외가 아니다. 사도행전이 초대 교회의 역사서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자신의 신학적, 선교적인 관점에서 쓰여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과 누가가 쓴 사도행전을 통해 바울의 생애와 그의 신학을 재구성하기 위해 바울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에 대한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양면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1.5. 바울 서신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접근: 갈라디아서의 구조에 대한 수사학적, 서신적 분석
갈라디아서에 대한 바울의 서신적 접근은 그 구조와 내용에 있어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본 문서는 갈라디아서의 구조를 수사학적이고 서신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
먼저, 갈라디아서는 다른 바울 서신과는 달리 '나'(에고)와 '너희'(휘메이스)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바울은 서신 전체에서 '나'와 '너희'를 대비시키며 자신의 사도직과 메시지에 대해 간증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적 구조는 갈라디아서가 단순한 권면이나 설교가 아닌,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 선포에 대한 변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갈라디아서의 구조는 전통적인 3등분 구조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이 감사 인사, 주제 전개, 권면과 인사의 3단계 구조를 따르는 것과 달리, 갈라디아서는 '에도스'(지식)와 '파도스'(감정)의 2등분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먼저 갈라디아인들이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을 받아들였던 '에도스'를 강조하고, 이어 그들이 거짓 교사들에 의해 배교한 데 대한 '파도스'를 드러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