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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토퍼 말로의 생애와 작품
1.1.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는 16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다. 그는 켄트 주의 캔터베리에서 제화공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말로는 캔터베리의 왕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당시 성직자로 진출할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
재학 중 이미 말로는 첫 희곡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을 썼으며, 오비디우스와 루카누스를 번역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587년 말로의 석사학위 수여가 보류되는데, 그가 1585∼1856년에 케임브리지를 떠나 가톨릭 신학교가 있는 랭스에 다녀왔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이에 추밀원의 개입으로 말로는 일단 혐의를 벗는다. 당시 '유용한 봉사'란 밀정 활동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었다.
말로는 석사학위를 받지만, 성직 대신 극작을 택하여 런던으로 향한다. 1587년에서 1588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탬벌레인 대왕』 1부와 2부는 런던 로즈 극장에서 애드미럴 경 극단에 의해 공연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는 『파우스트 박사』, 『몰타의 유대인』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말로의 런던 시절에 대해서는 이 네 편의 희곡들이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이외에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동시대 문인들이 기억하는 말로는 이단적 사고와 무신론에 빠져 있는 위험하고 난폭한 인물이었다. 말로는 필경 월터 롤리 경의 무신론 학파에 속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밀정 팀, 즉 프랜시스 월싱엄 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1593년 5월 30일 뎁퍼드에 있는 선술집에서 일어난 칼싸움에서 눈을 찔려 숨을 거둔 말로의 죽음은 의문의 사고였다. 토머스 키드의 증언에 따라 이단 혐의로 추밀원이 말로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후의 일이었다.
말로는 불과 10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영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다. 셰익스피어에 가장 영향을 준 작가일 뿐만 아니라 그 두세 가지 작품의 부분적 집필자였다고도 추측되고 있다. 그는 파우스트, 바라바스, 탬벌레인 대왕, 디도와 같은 거인적 영웅을 만들어냄으로써 한계와 통념을 뛰어넘고자 하는 전복과 위반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인물상은 말로가 살았던 르네상스라는 시대와도 무관하지 않다.
1.2. 말로의 주요 작품
1.2.1. 『탬벌레인 대왕』
크리스토퍼 말로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탬벌레인 대왕』은 한 목동이 유럽의 정복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비극 작품이다. 이 작품은 1590년에 2부작으로 출간되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을 선보였다.
『탬벌레인 대왕』의 주인공 탬벌레인은 낮은 신분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뛰어난 능력과 야심으로 인해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가, 결국에는 페르시아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거대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러한 탬벌레인의 성장 과정은 전통적인 비극 주인공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보통의 비극 주인공들이 비극의 희생자로 묘사되는 데 반해, 탬벌레인은 자신의 욕망과 포부를 적극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믿고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비윤리적인 가치관을 내세운다. 이처럼 탬벌레인은 전통적인 귀족이나 왕이 아닌, 자수성가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말로는 탬벌레인의 무자비한 행동과 폭력적인 기질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야심이 지니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탬벌레인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도시를 파괴하는데, 이는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했을 때 겪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탬벌레인 대왕』은 중세의 질서와 신념에 도전하는 르네상스적 인간상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러한 도전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이 작품을 통해 당대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반영하고, 개인의 자유와 욕망에 대한 갈등을 극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영국 근대극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1.2.2. 『포스터스 박사』
『포스터스 박사』는 크리스토퍼 말로가 쓴 작품으로, 파우스트 전설에서 취재하여 인간의 무한한 지적 욕망을 다룬 비극이다. 주인공 포스터스는 신학박사이지만 기존의 학문들에 회의를 느껴 마법과 악마 메피스토필리스의 도움을 받아 신의 영역까지 도전한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고 24년간 신의 권능을 누리는 대가로 살아간다. 그러나 포스터스는 결국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로 지옥에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 작품은 신보다 개인의 야망과 자존심이 더 강했던 포스터스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포스터스는 중세적 가치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과 욕망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는 당시 지식인들이 겪었던 기독교 신앙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포스터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려움과 절망은 인간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처음에 신이 되고자 했던 욕망과는 달리 결국에는 영혼도 육체도 잃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비극적이다. 이를 통해 말로는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