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한의학 독후감 작성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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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생성일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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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한의학 독후감 작성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 왕실의 한의학
1.1. 조선 왕들의 고질병, 피부병
1.1.1. 『조선왕조실록』의 피부병에 대한 기록
1.1.2. 대표적인 병증인 종기와 그 치료법
1.1.3. 온천욕을 통한 치료
1.1.4. 현종과 나력
1.1.5. 『치종비방』과 한방 외과학
1.2. 조선 왕실의 건강 비결, 식치
1.2.1. 왕의 수라상
1.2.2. 보양식으로 활용된 죽
1.2.3. 약식동원에 입각한 약선식
1.3. 술색에 빠진 군주들
1.3.1. 성종: 열두 명의 부인을 둔 호색가
1.3.2. 연산군: 정기 누설을 일삼은 색골
1.3.3. 광해군: 여색에 빠진 왕이 된 남자
1.4. 왕실에서 사랑받은 명약들
1.4.1. 우황청심원
1.4.2. 경옥고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조선 왕실의 한의학
1.1. 조선 왕들의 고질병, 피부병
1.1.1. 『조선왕조실록』의 피부병에 대한 기록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피부병은 이미 여러 문헌에서 역대 임금들의 고질적인 병으로 등장한다. 조선 왕들의 사인을 보면 문종, 성종, 효종, 정조, 순조가 종기에 따른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한의학서 가운데에도 종기나 부스럼을 다루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피부 질환에 관련한 전문의서가 별도로 만들어지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피부질환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치료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헌 기록에 나타난 피부병에 속하는 증상으로는 옹저, 습창, 단순한 피부 가려움증 등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질병 기록 중 피부병에 해당하는 내용을 일부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세종의 경우 젊은 시절 고기가 없으면 식사를 못할 정도로 육식을 즐겼고, 당시 왕들의 취미거리였던 사냥을 멀리한 비만 체구였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잦은 종기로 고생하였다. 문종의 경우에는 대부분 종기 기록이었을 정도로 그가 앓았던 고질병이었다. 효종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종기 증상을 앓았는데, 특히 낙상으로 인한 족부의 종기가 효종10년에 나타났으며 내의원에서는 청조탕을 투여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효종의 족부질환은 소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실록에는 피부병, 특히 종기에 시달린 조선의 왕들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다.


1.1.2. 대표적인 병증인 종기와 그 치료법

종기는 실록에 기록된 피부병 중 가장 많이 다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질병사에 있어서 종기의 유병률을 전부 추산하진 못하지만, 『素問 』에서 "동방의 지역은 물고기와 소금의 땅으로 바닷가와 물을 접하고 있어 그 병이 癰瘍이다."라 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방 지역에 종기가 많이 발생한다고 전하고 있다. 또 "조선 사람은 음식의 날 것과 찬 것을 먹기 좋아하는 고로 瘡腫이 많다고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라는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한의학적인 분류에 따르면 종기는 瘡瘍類로서 그 중 癰, 疽, 發, 走黃 등이 이에 속한다. 瘡瘍은 각종 病因이 인체에 침입 후 발생하는 體表의 화농성 질환이다. 外感으로 발생하였을 경우 처음에는 火熱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치료시기를 놓치면 紅腫熱痛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內傷에 의한 경우 장부의 부조화로 인해 발생하여 膿腫이 형성된다. 이 때 잘못 치료하면 正氣가 약해지고 창양의 독이 심해져 위급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치법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방식이 침으로 종기를 찔러서 피고름을 빼내는 것이다. 이는 『黃帝內徑 素問』에서부터 "중국의 동쪽 지역은 물고기를 먹고 짠 음식을 좋아해서 癰瘍, 즉 종기의 질병이 많은 곳으로 폄석으로 치료한다."로 나와 있다. 또 편에서는 고름 피가 잡힌 경우에 폄석이나 피침(곪은 곳을 찢는 침), 봉침(끝이 뾰족한 침)으로 종기를 찔러서 피고름을 빼내는 방법을 정석으로 권하고 있다. 『동의보감』도 마찬가지로 종기가 곪았을 때에는 열십자로 째고 고름을 배출하는 것이 좋다며 즉시 절개해서 고름을 빼내라고 조언한다. 또한 침을 달구어서 쓰는 낙침(烙鍼)도 소개하는데, 이것은 종기 주변에 두꺼워진 피부를 깊이 뚫어 죽은 피와 고름이 나오도록 하는 방법이다. 『동의보감』에는 거머리를 이용한 종기 치료법도 나온다. 종기에 물을 적신 종이를 얹으면 빨리 마르는 지점이 꼭대기인데, 그곳에 거머리 한 마리를 올려두면 거머리가 피와 고름을 빨아먹는다. 이 때 피고름을 빨아먹은 거머리는 반드시 죽는데 물에 넣으면 살아난다고 한다. 다만 이런 방법은 종기의 독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만 써야 하고, 심할 때에는 오히려 피만 빨려서 이롭지 않다고 경고한다.


1.1.3. 온천욕을 통한 치료

온천욕은 조선 왕들이 가장 좋아한 치료법 중 하나였다. 청나라의 강희제가 "좌탕 요법은 조선, 만주, 몽고에서 상세히 알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조선의 온천법은 역사성을 가진 요법이었다. 태종부터 세종, 세조 등 대부분의 왕들이 온천 요법을 선호했으나, 행차에 비용이 많이 들고 백성들의 부담이 극심해지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이용했다.

온천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피부병이다. 온천물의 유황은 크게 더운 성질이 있으므로 한의학에서 화로 규정한다. 피부는 신체 내부를 보호하는 일차 방어벽이므로 금이라고 본다. 화와 금이 만나면 용광로와 같이 끓어오르는데, 이 때 금은 불순물과 분리되어 순수해지며 그 내부는 더욱 치밀해진다. 즉, 유황천은 피부의 각질층을 녹이고 피부에 화 기운을 더해 탱탱하게 만들어 탄력성을 높이며, 물질대사를 항진시켜 상피 형성을 빠르게 한다. 여러 의서들은 유황천이 습창, 즉 진물이 나는 습진류를 잘 고친다고 설명한다.

또한 세종은 여러 번 안질을 앓았는데, 이때에도 온천을 활용하였다. 그는 눈병을 고치려고 여러 온천의 물을 길어와 무게를 측정했다. 실록에서는 경기도 이천 갈산의 온천물이 가장 무거운 것을 알아내고 세종이 행차했는데, 효험이 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세종은 평산...


참고 자료

변석미 외 4인, 「조선 역대 왕의 피부병에 대한 고찰」,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학회지> 23(3), 2010년
윤한용, 윤창렬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조선 중기 제왕들의 질병과 사인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14(1), 2001년
강도현, 「승정원일기의 의안을 통해 살펴본 효종의 질병과 사인」, 경희대학교 한의학 석사 학위논문. 2010년
김훈, 「조선시대 효종의 질병 및 사인에 관한 고찰」, <한국의사학회지> 17(2), 2004년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2009년
방성혜,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시대의 창, 2012년
이상곤, 왕의 한의학, 사이언스북스, 2014년
허준, 동의보감국역위원회 옮김, <대역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1999년
함규진, 왕의 밥상, 21세기북스, 2010년
조선왕조실록 (번역본)
승정원일기
내 손 안의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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