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음식과세계문화족보

미리보기 파일은 샘플 파일 입니다.

상세정보

소개글

"음식과세계문화족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근대식생활과 소비문화의 변화
1.1. 서론
1.2. 일제강점기 식품 관련법 정비와 사회변화
1.2.1. 식품위생법 정비와 육류 소비 관행
1.2.2. 주류 법 정비와 주조업의 변화
1.3. 새로운 식재료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3.1. 설탕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3.2. 아지노모토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4. 근대화를 통한 생활의 변화
1.4.1. 주막의 변화 - 무료 숙박에서 음식점·술집으로
1.4.2. 상류층 주부를 통한 변화 - 새로운 재료의 도입과 요리법의 변화
1.4.3. 전시체제기 소비생활의 변화
1.5. 결론
1.6. 참고문헌

2. 쌀과 우리생활
2.1. 벼의 기원과 그 전래
2.1.1. 벼의 기원
2.1.2. 우리나라로 전파 된 벼
2.2. 농기구 발전과 소사용
2.2.1. 농기구의 발전과 소사용
2.2.2. 농기구의 종류
2.2.3. 영향
2.3. 이앙법
2.3.1. 이앙법의 정의
2.3.2. 이앙법의 장점
2.3.3. 이앙법의 영향
2.4. 일제강점기의 수탈
2.4.1. 토지조사사업
2.4.2. 산미증식계획
2.4.3. 공출
2.5.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중 쌀의 입지
2.5.1. 혼·분식 장려
2.5.2. 통일벼
2.6. 우르과이라운드, 한·미 FTA
2.6.1. 우르과이라운드
2.6.2. 한·미 FTA
2.7. 참고문헌

3. 한국전통문화 속 식생활 문화의 변화
3.1. 여성의 상위 및 남성과의 겸상시대
3.2. 식기와 수저의 서열적 전유 현상의 붕괴
3.3. 젓가락 사용의 보편화
3.4. 밥 먹는 순서의 붕괴
3.5. 맛있는 반찬에 대한 독점현상의 소멸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근대식생활과 소비문화의 변화
1.1. 서론

근대식생활과 소비문화의 변화는 일제강점기 식품 관련법 정비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근대화와 함께 우리 사회가 인공화된 일상을 살아가게 되면서 식생활에서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전근대사회의 자가 생산에 의한 식재료 조달 방식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공장에서 가공된 식재료의 사용 또한 늘어났다.

특히 일제강점기 들어 도입된 식품위생법은 식품 관련 제도의 근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해당 법령은 육류 유통 및 판매 관행에 큰 변화를 초래했는데, 이는 오랜 기간 형성된 상행위와 관행을 바꿔야 했기 때문에 큰 체감이 있었다. 주류 관련 법 정비 또한 전근대적인 주조업의 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식품 관련법의 제정은 식생활의 근대화를 이끄는 핵심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설탕과 아지노모토 등 새로운 식재료의 도입 또한 식생활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설탕은 서구의 문명화와 건강한 국민상징으로 여겨졌고, 아지노모토는 편리성과 경제성으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새로운 식자재의 도입은 전통적인 조리법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근대화에 따른 다양한 변화는 주막의 변화, 상류층 주부의 식생활 개선 운동, 전시체제하의 소비생활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주막은 무료 숙박 기능에서 음식점과 술집으로 변모했고, 상류층 여성들은 서구 문명화에 부합하는 식생활 개선 운동을 펼쳤다. 또한 전시체제기에는 식량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절미운동, 혼식 장려, 대용식 개발 등 국가 주도의 다양한 정책들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근대식생활과 소비문화의 변화는 다양한 층면에서 나타났으며, 이는 식민지 시기 조선사회가 겪은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1.2. 일제강점기 식품 관련법 정비와 사회변화
1.2.1. 식품위생법 정비와 육류 소비 관행

선진국에서는 19세기 이후 근대산업의 발전과 함께 가공 식재료나 식품첨가물, 포장기술이 발달하게 되자 식품으로 인한 위생상 위해방지와 국민건강 향상 및 증진을 목적으로 한 식품위생법의 법제화가 추진되었다. 일본의 경우, 영국·미국·독일의 선진 위생제도를 바탕으로 식품위생 관련 규정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한일병합을 전후로 한반도에 이식되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식품위생법'이 발포된 1962년까지 우리나라 위생행정의 기본 틀은 일제강점기에 제정된 식품 관련 제재규칙들이었다.

한일병합 이후에는 식품위생 관련제도가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강화된다. 가공식품의 발달, 음식물 소비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필요해진 제도로 병합 전 통감부시대에 도입된 제도보다 대상이 넓어졌다. 1911년 유해식품, 청량음료, 우유, 1914년 혼성주, 숙박·요리업 규칙 등 식품위생 관련 제도 등이 차례로 제정되었다.

근대적 식품위생 관련 제도 중에서 특히 육류의 유통 및 판매와 관련된 도수규칙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도입된 식품위생관련 제도라는 점과 산업화나 상업화로 인해 파생된 기타 식품위생제도와 달리 이미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육류 관련 상행위 및 식생활관습에 영향을 주는 사안이었으므로 다른 제도에 비해 변화에 대한 체감이 컷을 것으로 짐작된다.

메이지유신 이후 단백질 공급원으로써 육류의 필요성을 인식한 일본은 1877년 도수장규칙을 제정하였으나 관리 감독을 위한 전문 인력이 양성되지 않아 1904년 12월에야 '공중위생수역경찰규칙'을 제정하여 경찰기관에 의한 감독이 시작되었고, 1906년에 이르러 전문 식육위생경찰기관에 의한 단속 시행세칙이 구체적으로 완비되었다.

조선시대 이래 소는 다른 육류와 달리 농우로 사용되었으므로 도살에 대한 제한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소고기와 우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사설 포사가 생겨났고 포사영업은 포사주인 및 지방 관아와 관속의 주요 수입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국고로 수납되어야 할 세금이 제대로 징수되지 않자 제도 개혁을 단행한 것이었다.

한편 근대적 성격의 도수규칙은 법규의 제재대상이 되는 육종도 소 이외에 양, 돼지, 말, 개까지 확대하여 실제 국민건강에 크게 영향을 끼칠 가축류의 도살, 유통과정을 관리하려 하였다. 도장의 허가에 있어 일정한 설비를 갖추어야 했고, 환기를 위한 창의 위치, 가축 종류당 소독에 필요한 급수량, 도살장 면적, 건축 구조물의 자재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까다로운 위생기준이 마련되었다. 법규에서 규정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관영도살장만 운영이 허가되고 도살되는 개체 두수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합리화되었다.

한편 1911년 '수육판매규칙'이 전국적으로 3-6월에 거쳐 순차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규칙은 기존 방식으로 판매업을 하던 조선인들에게 이전까지의 상관행을 폐기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을 학습하며 익히도록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함으로써 이후 새로운 상행위 관습을 만들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이를 통해 소비자 구매행동의 양분화가 유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일제의 식품위생 관련 제도 도입은 한반도 내 육류 생산과 유통, 소비 관행의 근대적 전환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상거래 관습과 위생 기준이 법제화되면서 일상 식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1.2.2. 주류 법 정비와 주조업의 변화

조선시대에는 각 농가가 자가용으로 생산하거나 주막과 같은 소규모 술집에서 생산·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주류 생산에 종사하는 주조업자라 부를 만한 이는 지역사회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민지기에 접어들면서 자가용 주조가 금지되면서 주조업자의 합동 집약이 진전되었다.

조선주는 크게 약주·탁주·소주로 나뉘었다. 탁주와 약주는 장기적 보존이 어려운 생주 형태였기 때문에 원격 유통이 불가능하였고, 주막이나 주가와 같은 소규모 가게에서 생산 및 판매되었다. 1916년경 약 12만 개의 주조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당시 6만여 동리에 한 동리당 두 개 정도씩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술 문화에 전환점이 된 것이 1909년의 주세법과 1916년의 주세령이었다. 조선왕조에서는 식량 정책 차원에서 술의 제조를 금지하는 '주금'정책을 실시한 적이 있었지만, 술을 양조·판매하는 것에 과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통감부는 근대 일본의 경험을 응용하여 우선 재원 조사를 통해 주세 부과의 유효성을 확인한 후 주세법을 발포하였다.

주세법 시기에는 제조 석수를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여 일정한 주세만 지불하면 자가용 주조를 무제한으로 인허하였다. 그러나 주세령 시대가 되면서 주조업의 통폐합이 급속히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많은 주조장들이 장부 기장이 불가능한 영세 경영을 하고 있어 세무서로서도 '지도 개선'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군소 주조장을 합동 집약하여 '자금력 있고 교양 있는 인물'에게 경영하도록 하였다.

구체적인 통폐합 정책으로는 ①한 주조장의 제한 석수(연간 최저 제조 석수) 설정으로 영세 경영 도태, ②조선주에 대한 높은 세율 적용으로 이익 방지, ③주조 조합제도 도입으로 통합 추진, ④신규 면허 억제 등이 있었다. 그 결과 1916년 9만 개 이상이었던 탁주 주조장이 1930년대 4천 개 수준으로 격감하였고, 자가용 주조 면허도 1916년 29만 명에서 1930년대에는 거의 소멸하였다.

이와 같은 주조업 통폐합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위한 것으로, 주세 수입 증대와 주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국가 통제력 강화를 목적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술 문화는 크게 변화되었고, 주조업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1.3. 새로운 식재료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3.1. 설탕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9세기 이전까지 설탕 소비문화는 생산지나 생산지와 교역이 빈번한 곳에서 발달했다. 그 이외 지역에서는 설탕이 희소한 제품으로 최상류층만이 사용하는 귀한 약재, 장식재였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세계적으로 설탕의 쓰임새가 바뀌었다. 근대적 설탕 소비는 전근대와 달리 세계적으로 설탕이 음식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설탕 가공식품이 세계화되고, 설탕이 각국 음식과 융합하여 토착화되었다. 설탕 소비가 확대되면서 세계인의 음식 기호, 취향, 입맛이 변하고 식사구조가 변화했다.

을사조약이후 국권상실 위기 속에서 일본의 탈아입구론 영향을 받은 한국 문명 개화론자들은 일본을 통해 설탕 문명화 담론과 영양담론을 수용했다. 이들은 서구제국이 강대국이 된 것은 국민들이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이 건강하려면 위생적이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해야하는데 서구인들이 많이 먹는 설탕은 칼로리가 높아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양식이었다. 설탕이 인체에 매우 유효하여 많이 먹은 나라일수록 체력이 좋아져 문명화, 근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문명개화론자들은 국민 1인당 설탕소비량으로 그 나라 문명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는 문명화담론과 국민을 건강하게 하는 효율적 칼로리 공급원이라는 영양담론을 받아들였다. 세계 각국의 문명수준은 국민 1인당 설탕소비량으로 측정되고 서열화 되었다. 이들에게 설탕은 국민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소비를 장려해야 하는 근대적 영양식품이었다.

서구중심적 설탕 문명화·영양담론은 해방 후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말 왕실을 비롯한 최상류층이 먹던 설탕가공식품은 1930년대 말이 되면 도시 소학교에 다니는 한인 어린이가 이틀에 한 번 이상 먹는 식품이 될 정도로 소비층이 확대되었다. 과자소비는 소득, 민족,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과자는 일본인, 부유층, 도시민일수록 섭취횟수가 많았다. 과자는 상류층임을 표시하는 사회적 증거였다. 이처럼 설탕은 더 이상 약재로 사용되지 않고 음식과 결부되면서 용도가 확대되었다.


1.3.2. 아지노모토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3.2. 아지노모토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지노모토는 완성된 음식에 첨가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식재료였다. 마지막에 아지노모토를 쳐서 먹는다는 새로운 식습관은 쉽게 수용되기 어려웠다. 아지노모토는 이에 조선인의 식생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친근함과 신뢰를 만들어냈다. 또한 아지노모토는 '화학조미료가 가격에 대비하여 효과가 좋아 맛있고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라는 점을 강조하여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으로 화학조미료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아지노모토의 광고는 재조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신문광고의 대상이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즉각적으로 해당 년도의 신문광고의 게재량 증가와 조선인의 생활상을 차용한 광고의 등장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한복을 입은 조선인 주인공과 식사장면만이 아닌 다양한 소재가 광고에 등장한다. 명절별·계절...


참고 자료

공준원 저, 우리 쌀 오천년, 우인북스 2014
백명식 저, 위대한 쌀과 밥, 씽크스마트 2011
최해춘 저, 쌀을 알자, 신구문화사 1997
이춘녕 저, 쌀과 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1991

주의사항

저작권 EasyAI로 생성된 자료입니다.
EasyAI 자료는 참고 자료로 활용하시고, 추가 검증을 권장 드립니다. 결과물 사용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AI자료의 경우 별도의 저작권이 없으므로 구매하신 회원님에게도 저작권이 없습니다.
다른 해피캠퍼스 판매 자료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용도로만 이용해 주셔야 하며, 수정 후 재판매 하시는 등의 상업적인 용도로는 활용 불가합니다.
환불정책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