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근대사감춰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한국근대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1.1. 흥선대원군 재평가
1.1.1. 서론
1.1.2.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국내외 상황
1.1.3. 흥선대원군의 내정개혁
1.1.4. 흥선대원군의 대외정치
1.1.5. 흥선대원군에 관한 기존 평가와 재평가
1.2. 신채호 재평가
1.2.1. 서론
1.2.2. 신채호의 등장과 활동
1.2.3. 신채호의 역사 연구
1.2.4. 신채호에 대한 평가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한국근대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1.1. 흥선대원군 재평가
1.1.1. 서론
흥선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인해 일명 '쇄국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 중 재평가해야 할 인물로 흥선대원군을 선정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흥선대원군은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과 관계된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빼놓고 한국 근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둘째, 현재 자본주의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외국과의 통상과 수교이다. 우리나라 근대 외교, 무역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번번이 갈리는 인물이다. 인물을 평가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해석자의 시각과 사고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갈리고 의견이 많은 쪽으로 시각이 쏠려 기존의 평가에 한정되어 인물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에 필자는 학계의 일반적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1.1.2.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국내외 상황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당시의 국내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인 19세기는 정치, 사상, 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왕의 위상이 약화되고 세도가문과 관료 세력들이 실권을 장악하는 "세도정치" 시기였다. 이에 따라 피지배층의 저항운동인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나 "민란의 시대"라 불리기도 하였다.
사상적으로는 유교 성리학이 지배적이었지만, 천주교 신도들이 늘어나면서 실학자들이 등장하여 근대적 정신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양선 출몰 등 국가 위기 상황에 직면하자 여전히 쇄국정책에 반대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사상 도고들의 독점적 자유주의 상업이 성장하여 근대 조건의 발판이 마련되었지만, 국가 권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오히려 19세기에 들어 인구 감소, 실질 임금 하락, 생산성 하락, 쌀값 상승 등으로 시장경제가 위축되었다.
한편 당시 국제 정세는 청, 일본 등이 서구 열강의 압박 속에서 자신들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었다. 청은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 개항하였고, 일본은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를 계기로 미국에 개항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은 "위정척사" 정책을 고수하며 쇄국을 고수하고 있었다.
1.1.3. 흥선대원군의 내정개혁
흥선대원군은 노론계열의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척결하고 전통적 왕조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내정개혁"을 선택했다. 그는 내정개혁을 통해 왕실의 힘을 부흥시키고, 세도정치의 문제점들을 시정하며, 고른 인재를 등용하고자 했다.
우선 정치제도 재정비 및 군사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최고 권력 기구였던 비변사를 혁파하고 의정부로 바꿔 행정 기능을 담당시켰으며, 군사 기능은 삼군부로 독립시켜 상설적인 최고 군령 기관화하였다. 또한 6조 기능을 부활시켜 통치 체제를 국왕 중심으로 재정비하였다.
다음으로 경복궁 재건 사업을 추진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경복궁을 재건하기 위해 원납전과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이는 경제 질서를 왜곡하여 재정상의 문제점을 초래하였으나, 재건 자체만으로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 조선 왕조의 중흥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인재 등용 및 문벌 타파 정책도 단행했다. 그는 문벌을 가리...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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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일보, [문화人칼럼] 단재 신채호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서
https://www.joongdo.co.kr/web/view.php?key=*************5765
중앙일보 [김옥균은 친일파였을까, 그의 맞수도 아니라 한다.]
매일경제 [약산 김원봉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