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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주의 성경 해석과 예배 모범
1.1. 개혁주의 성경해석 방법
개혁주의 성경해석 방법은 성경 저자(하나님)의 의도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하여 성령의 조명에 의지하며 성경을 연구한다. 개혁주의자들은 유기적 영감론에 따라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를 사용하신 측면을 따라 성경을 학문적으로 해석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영감하신 측면을 따라 성경의 명령의 신적 권위를 믿는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를 사용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하도록 하신 측면까지도 영감된 것으로 믿기에 이러한 부분에서도 성경의 전체를 영감하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한다.
개혁주의 성경학의 특징은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각 권이 기록된 역사적 정황 속에서의 의미를 무시하지 않고 살려낸다는 점이다. 또한 구약성경에 담긴 의미들이 신약성경에서 폐지되지 않고 완성되는 연속성 속에서 신약성경을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반율법주의나 율법폐지론과 분명히 구별되는 개혁신학적 특징을 보이게 된다.
개혁신학적 성경학은 믿음과 이성을 활용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믿으며 출발하고, 이 믿음을 지키며 진행하는데, 이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사도성에서 출발하는 정경론과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신앙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발생한 것을 설명하는 기독론 논증에 토대한 합리적 근거를 가진다. 또한 개혁신학적 성경학에서는 원본의 본문에 접근하는 본문 비평이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1.2. 개혁 신앙의 바른 예배
1.2.1. 개혁교회의 예배
개혁교회의 예배는 예배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선포와 성례전의 집행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통 로마 카톨릭 교회가 미사를 중심으로 한 예배 순서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개혁 교회는 설교와 성찬식을 가장 중요한 예배 의식으로 여겼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 있어서 성경이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 것은 배제하고자 했다. 따라서 개혁교회의 예배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다. 루터는 법칙에 따라 전통적 사항들을 일부 허용했지만, 칼빈은 성경이 직접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개혁교회의 예배는 외부의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말씀 선포와 성찬식 중심으로 단순화되었다.
칼빈은 예배가 권위 있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성을 수용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성경적이고 미신적이지 않은 전통만을 인정했다. 말씀 선포와 성례전이 예배의 핵심이며, 설교는 성경 본문을 상세히 해설하고 현실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시편 찬송을 통한 회중의 참여와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례전의 강조가 특징이었다.
이처럼 개혁교회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하며, 성경 말씀 선포와 성찬식을 통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로마 카톨릭의 미사 중심 예배에서 벗어나 초대교회의 예배 전통을 회복하고자 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1.2.2. 한국교회의 예배의 문제점
한국교회의 예배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배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와 정립이 부족하다. 한국교회의 예배 모습은 교단이나 교파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고,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성경적인 검증과 해당 교회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다양한 예배 형태가 혼용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믿고 확신하는 대로 예배를 하게 되어, 교회가 그동안 쌓아온 신학적 교의를 무시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 신학 없는 예배는 감상적이고 유약해지며, 단순한 인간의 축제 모임이 되어버릴 수 있다. 예배와 신학은 함께 결합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의 기초가 없는 예배는 참된 예배라 할 수 없다.
둘째, 주정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인 예배로의 변질을 볼 수 있다. 공중예배 자체가 무절제하고 무질서하게 드려진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예배와 성령의 인도하심, 임재에 소홀히 생각하는 예배가 될 것이다. 점차 공예배에서 부흥회나 기도원, 대형집회 스타일의 열광주의적 예배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순서에 없는 즉흥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정적 흥분과 사람의 반응을 유도함으로써 자기도취적 혼미한 예배가 되어, 신령한 예배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셋째, 샤머니즘과 이교적인 요소가 있다. 예배가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계와 역사를 주관하시며, 범죄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경배하는 예배가 아니라, 현세적 축복에 치우친 선포와 기도가 현실 축복 받는 간구의 수단이 되고 헌금이 복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예배의 태도가 인본주의화 되고 있다. 이러한 예배 분위기 속에서는 죄의 심각함이나 구원의 소중함과 거룩과 성화로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넷째, 외형적 변형과 새로운 의식주의의 등장이다. 먼저 예배의 공간이 이분화되었다는 점이다. 강단을 제단이나 지성소라고 표현하며 신상시함으로 교회의 강단은 자연히 이중 강단으로 변형되었고, 교회에 따라서 삼중으로 된 곳도 있다. 이는 교권과 교회 직분의 계층화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배에서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들어 광고하고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복을 빌어 주는 것은 한국교회 이외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희한한 광경이다. 또한 장로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장로들만을 위한 옷을 입고 있다든지, 기도자나 헌금위원들이 가운을 입는 것은 개혁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외형의 모습들이다. 이러한 요소의 첨가로 예배의 중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성만찬 예배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참된 교회 됨의 표지가 바른 말씀의 선포와 바른 성례의 시행에 있다고 말하면서, 성례에 있어서 성만찬의 시행이 일 년에 두 번정도 거행하는 것으로 고정되었다. 칼빈은 변질된 중세의 미사를 말씀과 성례전의 소박한 균형이 이루어진 성찬 예배로 개혁하려 노력했고 다른 개혁자들도 성찬이론을 수립하여 실천하려 했다. 칼빈의 지적처럼, 성만찬은 그 자체가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성찬식을 자주 행하면서 예배와 설교가 그리스도 중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예배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보다 엄숙하고 차분한 예배가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성만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적임재를 체험하게 함으로 신앙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여섯째, 설교사역이 위축되고 있다. 복음에 불타던 열정이 쇠잔해 가고 성경의 전체성이 결여된 균형 잃은 설교가 나타남으로 즉흥적이고 쇼맨적인 만담으로 강단을 채우거나, 설교의 중요성을 잊고 대체물을 만들어 냄으로 강단의 힘이 약화되고 말씀에 대한 직무의 중요성이 축소되었다.
1.2.3. 예배갱신의 원리
예배갱신의 원리는 예배신학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존엄성을 인식하고, 자신을 굽혀 꿇어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여 하나님과 예배자의 교제 혹은 만남이며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믿음 안에서의 응답이다. 따라서 개혁교회의 예배갱신원리는 실리적인 필요에서가 아니라 신학적 견지에서 검증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예배는 계시에 의존하고 개혁교회의 예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계시와 응답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은혜를 발견했을 때, 그 은혜에 믿음으로써 응답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로 인도하지 않는 신학은 거짓이고 해롭다.
예배갱신의 원리는 성경적(biblical)이어야 한다. 성경은 예배의 필요성을 말하고 예배의 성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4:20-30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