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가부장제 개념과 역사
1.1. 가부장제의 의미
가부장제(家父長制)란 가장(家長)이 가족성원에 대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 통솔하는 가족형태를 의미한다. 가부장(家父長), 또는 부가장(父家長)이란 단어는 의미 그대로 가족의 우두머리인 가장은 '아버지'임을 일컫는다. 따라서 가부장제는 협의로는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를 의미한다. 광의의 의미로는 개인 가족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연소자, 여자들에 대한 남성지배를 제도화하여 사회의 모든 주요 제도의 권력을 남성이 가지며 여성이 그러한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제도를 뜻한다. 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을 합법화, 사회구조화 된 제도로 보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체계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1.2. 고려시대 및 조선전기의 가족제도와 구조
고려시대의 부계사회
고려시대의 사회적 성격은 수취체계의 기준을 노동력이냐, 토지 생산력이냐를 가지고서 고려 부신집권 이전까지를 고대사회로, 그 후부터 조선시대 이전을 과도기로, 그리고 조선은 중세 봉건사회로 보는 것이다. 중앙정부에 의한 성씨 집단체제로서의 공동체 촌락 구조는 조선의 지방 제도로 이행하면서 신분적 성격을 불식하고 단순한 행정 체계로 편입함으로써 중세사회로의 커다란 질적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의 호족을 단순한 행정 요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족 집단의 유력 계층 내지는 우두머리로서의 촌락민에 대하여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존재, 즉 가부장적 노예주로 파악하는 학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 담세층으로써의 자영농이 일반화되고 국가로부터 보호, 육성되고 있으며, 지방호족에서 중앙귀족으로 성장해 가는 나말 여 초의 지배세력의 변화, 발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려사회에서는 16세 이상 60세까지 국역에 복무 가능한 정(丁)과 부역의 단위로 9등 호제 등에 대한 관리가 있다. 그러나 이때 오히려 주목할 것은 고대국가에서와 같은 정녀(丁女)가 보이지 않음으로써 여성노동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 즉 공민으로서의 여성의 존재가 인정되고 여성의 생산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있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이상의 고려 전·후기 사회경제적 배경 위에 고려의 가족 및 친족제도가 조선과 다름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나타났듯이 고려사회의 생산양식이 조선과 같지 않으므로 소가족 경영에 의한 농업구조가 상정될 수 없음에 기본적 이유가 있다. 즉 공동체 중심의 생산구조, 그리고 수취구조에 걸맞는 가족 및 친족 조직이 유지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모계제의 유제 또는 양계적 친족구조를 이룬 동시에 촌락공동체의 성격이 유지될 수 있었던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고려의 정치 지배구조가 음서제와 과거제의 바탕에서 귀족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로 존재하였고 그에 따르는 신분사회였음도 전제되어야한다. 때문에 가문과 본관 등 특권 신분 유지에 필요한 출신 배경인 가계를 중시하고 이때 부계 못지 않게 처·모계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출신 성분을 굳이 따져야 하는 지배층에서는 고대사회에서의 부계제가 보다 강화되고 정교화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본질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다만 신라의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도로부터 좀더 개방적인 귀족제 사회로의 전환은 뚜렷하지만 거기에 따른 여성의 지위상의 변화는 신분제가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려왕실의 족내혼은 모계혈통을 중시하는 왕실의 보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후비(后妃)들이 모계성을 계승하고 모향(母鄕)까지도 자신의 고향으로 간주하는 예가 많이 있었다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나 고려에서는 왕과 귀족, 혹은 관료층간의 세력관계에서나 전통 풍습과 유교식 의례로 인하여 근친혼, 부모양계의 중시 등이 조금씩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으나 크게 조선후기와 구별하여 단순화시켜볼 수 있다.
1.3. 조선 중기 이후의 가족제도
조선 중기 이후의 가족제도는 유교이념과 법제의 확산을 바탕으로 가족원의 구성과 관계의 형태가 직계가족으로 변화하면서 점차 가부장제 가족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우선 조선왕조의 창시자인 이성계는 권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의 자유분방한 여성의 활동과 무속 등의 관습을 비판하며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세종 때에는 한글창제를 통해 유교의 지배규범이 일반 서민층으로 확산되었고, 여성의 행실에 관한 규범이 상세해지고 강화되었다. 특히 [삼강행실도], [내훈], [여계] 등을 통해 내외법, 남녀칠세부동석, 정절 등이 여성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가르쳐졌다.
더불어 법제적으로는 조선후기에 편찬된 [경국대전], [속대전]에서 가장권, 즉 가장이 자신의 직계가족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규정됨으로써 법제적으로도 가부장권이 뒷받침되었다. 이와 같은 유교이념과 법제의 확산을 바탕으로 직계가족으로 변화하면서 가부장제 가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