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Brexit의 개요와 역사
1.1. Brexit의 개념
2016년 세계인의 관심을 자아냈던 Brexit는 '영국'을 뜻하는 'Britain'과 '탈출'을 뜻하는 'exit'의 합성어로, 영국이 EU, European Union을 탈퇴하는 것을 뜻한다. 1971년 투표로 EU의 모태인 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가입을 찬성하여, 1973년에 합의와 협상을 끝내고 EEC에 가입한 영국은 또 다시 2016년에 시행된 국민투표로 EU를 떠나는 첫 회원국이 되었다. 투표는 무려 72.2%을 투표율 기록하였으며 EU 잔류에 48.1% (16,141,241표), EU 탈퇴에 51.9% (16,141,241표)의 결과로 영국 내에서도 의견이 매우 팽팽하게 대립하였다. 따라서 Brexit는 영국의 EU 탈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2. Brexit의 태동과 전개과정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려고 시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국은 1975년에도 이미 EEC에 잔류 할 것인지 투표를 진행한 바 있으며, 그 후에도 EU탈퇴를 공약으로 삼는 정당들이 등장하였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들어 갈 때부터 불협화음이 많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유럽은 경제 협력을 위하여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심으로 European Economic Community를 창립하였고, 이에 맞서 영국 또한 EEC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 특히 북유럽 국가들과 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을 창설하였다. 하지만 EFTA는 EEC에 밀리게 되고 영국은 EFTA를 탈퇴하면서 까지 EEC에 가입하게 된다. 실제로 EFTA에서는 영국에 대한 비난이 거셌으며 EEC 또한 주축이던 프랑스의 반대와 거부권 행사로 실질적인 가입이 늦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난을 이겨내고 EEC에 가입했던 영국은 2년 만에 EEC 탈퇴로 국민 투표를 거행하였다. EEC의 유럽공동체 관세 로 인한 손해 때문 이였다. 영연방 국가들로부터 값싼 가격에 물건이나 식료품등을 수입하던 영국은 이 공동농업정책과 공관세정책등의 '공동' 규칙으로 인하여 오히려 물가가 오르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식량자급도가 낮아 외부에서 들여오는 식료품에 의존하고 있던 영국은 관세로 인하여 식료품의 가격이 높아지자 여러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은 잔류에 투표하였고 brexit의 첫 시도는 무산된다. 이후 꾸준히 EEC 탈퇴에 대한 정치적인 의견과 공약들이 즐비하였으며, 이것은 1993년 11월 EEC가 EU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계속 되었다. 영국은 EEC에 가입 시 예상 했던 것과 달리, EU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였다. 유럽을 주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분담금을 시작으로 자주권 없이 지켜야만 하는 규제들이 늘어났고 이것은 점점 더 큰 불만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불씨는 정치인들의 좋은 먹이거리가 되었다.
1.3. Brexit의 현재 진행 상황 및 향후 전망
2005년부터 총리직을 유지해왔던 David Cameron이 브렉시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보수당의 Theresa May가 총선 없이 총리에 취임한다. Theresa May는 이제 막 시작 된 브렉시트를 이끌어 나가며 2017년에 EU에게 영국이 탈퇴 할 것을 통보한다. 이를 시작으로 6차례의 협상을 통하여 넘쳐나는 합의사항을 조율해나갔다. 이 때 대두 된 문제 중엔 영국에 거주하는 EU시민과, EU국가에 거주하는 영국 시민에 대한 시민권 문제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의 국경 문제가 포함되었다. 대부분의 문제들을 유지하고 별도의 합의 전 까지는 EU의 관세 동맹에 잔류하기로 합의 한 영국은 2018년 11월에 EU의 탈퇴협정에 서명한다. 충격완화를 위하여 전환 기간 동안은 EU의 관세 동맹 등에 머물러 전과 같은 혜택을 받기로 하였으나, 더 이상 EU국가가 아니기에 의결권은 부여되지 않았다. 이혼합의금으로 불렸던 재정기여금은 예상보다 많은 390억 파운드로 선고되었으며 일시불이 아닌 시간에 걸쳐 EU에 지급하기로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였다. 그러나 2019년 1월, 영국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되었으며 그 해 3월에 두 번째 합의한 또한 부결되었다. 브렉시트 시행일 또한 4월 12일로 연기하였고, 다음 달엔 추가로 6개월을 더 지연시켰다. 결국 5월에 Theresa May 총리가 합의안이 부결되고 지연되는 것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퇴하였다. 두 달 뒤, 브렉시트 강경파인 Boris Johnson이 총리직에 올랐다. 2019년 10월에 또 다시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하여 2020년 1월 31일로 합의되었다. 추가적으로 영국은 EU와 브렉시트 합의 안을 수정하였으며 기존에 제기 되었던 backstop 설치안을 삭제하였다. 하지만 Hard boarder 또한 최소화하였으며 영국은 EU관세동맹에서 탈퇴하지만 북아일랜드만 2025년까지 EU단일 시장과 관세동맹에 남기로 합의하였다. 12월 Boris Johnson 총리는 조기 총선을 진행하였으며 집권 중이던 보수당이 하원의 과반을 차지하여 브렉시트에 힘을 얻어 총력을 가한다. 올 해 2020년 01월 초, 극적으로 영국 하원에서 EU 탈퇴협정법안이 가결되었으며 1월 말 EU 회원국이 브렉시트 협정 안을 승인, 1월 31일에 브렉시트를 단행하였다. 영국은 올 해 1월 31일자로 유럽연합을 탈퇴하였으나 2020년 12월 31일까진 이행유예기간으로 의결권 없이 EU에 구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영국은 그동안 EU에서 누려왔던 권한을 사용하며 교역을 할 수 있다. 자유무역, 통관, 관세, 여행, 비즈니스에 관한 규칙들이 유지되므로 해당 기간 동안 영국은 이 전환 기간이 끝나고 난 후의 법률적, 정치적인 문제들을 준비해야만 한다. 특히 자유무역이 사라짐으로 영국 상품에 대한 관세 문제 등의 대한 대안 및 기준도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완벽한 EU 탈퇴 이후 상황에 따라 또 다른 EU 가입 국가들의 행보 또한 정해 질 예정이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로 이루어진 영국에서도 브렉시트 잔류에 찬성하였던 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가 재천명되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경제적인 독립을 허용하겠다는 영국 보수당의 의견이 EU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 스코틀랜드 독립의 기반을 다시 한 번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스코틀랜드가 영국과 갈라서고 EU에 재가입하여 홀로 서기에 성공한다면, 이에 따라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 터키 내 쿠르드족 등 분리 독립을 꿈꾸던 민족들에게 또 다른 돌파구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유럽의 경제적, 지리적 변화 또한 큰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영국이 첫 EU 탈퇴 회원으로서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누가 그 길을 따라 걸을지, 또는 그 길 또한 막힐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하여 브렉시트를 강행한 영국에서조차 앞으로의 전망을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촉박한 시간 속에서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떠나가는 것들을 잡지 못하고 No Deal Brexit로 모든 것을 마무리 할지, 아니면 자본주의 경제를 선도한 나라답게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축하고 떠나가는 투자자들의 마음을 잡아 계속해서 유럽의 금융허브로 남아 있을 수 있을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1.4. Brexit와 아일랜드 문제
아일랜드과 영국의 일 부 인 북아일랜드는 다른 나라이지만 하나의 섬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섬에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붉은 핏물이 스며든 역사를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