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책의 내용 중 납득(수긍)하기 어려운 부분, 인상적인 부분, 재미있는 부분
1.1. 고다이고 천황의 몰락과 결사항쟁
고다이고 천황의 몰락과 결사항쟁은 일본 남북조 시대에 있었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고다이고 천황은 권력을 장악하고자 수많은 무사들과 대립하였으나, 결국 자신의 힘만으로는 막부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몰락하게 된다.
고다이고 천황은 무사들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고자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며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였다. 도서에 따르면 고다이고는 여러 차례 도망치면서도 여전히 천황으로서의 권위를 지키려 하였으며, 결국 시골의 한 무사에게 잡혀 유배를 가게 된다. 이는 당시 고다이고 천황의 무능력과 현실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고다이고 천황의 실패 이후, 그를 따르던 무사들 또한 죽음을 선택하는 결사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적에게 굴복하기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였는데, 이는 무사도 정신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무사들의 자결이 과연 명예로운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무의미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고다이고 천황의 몰락과 그 후 전개된 결사항쟁은 일본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사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천황 중심의 전통적 권력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이 같은 변화가 근대 일본의 정치, 사회 발전에 밑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2. 왜구의 고려 침략과 피해
왜구의 고려 침략과 피해는 당시 고려 사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 왜구는 일본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배경으로 등장한 해적 세력으로, 이들은 오랫동안 고려를 괴롭혔다. 도서에 따르면, 123쪽에서 124쪽까지의 내용을 보면 왜구가 고려 말 시기에 미친 피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왜구들은 고려의 물자와 인력을 약탈하고 토지를 파괴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성읍과 주요 항구를 공격하여 거주민들을 납치하였으며, 농민들의 생산 활동을 방해하여 고려 백성들의 경제적 고통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고려의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고려 정부의 무능력한 대응 속에서 내부 분열이 가중되었다.
특히 왜구들은 섬진강을 통해 여러 차례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고려 지역을 약탈하였음이 191쪽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에 고려 정부는 성벽 축조 등 방어 대책을 수립하였지만, 결국 왜구의 침략을 막지 못했다. 결국 고려는 왜구의 지속적인 침략 앞에서 무력했으며, 이는 고려의 멸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왜구의 고려 침략은 고려 말기 사회에 엄청난 폐해를 가져왔다. 이는 고려의 내부 문제 외에도 주변국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고려는 왜구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는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3. 고려의 무능한 대응과 백성의 고통
고려는 왜구의 침략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고려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126쪽 4번째줄부터 12번째 줄에 따르면, 고려 정부는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백성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인 어업과 농업을 보호하지 못했다. 백성들은 왜구의 약탈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정부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민심이 매우 흉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191쪽 밑에서 3번째 문장에서는 왜구들이 섬진강을 통해 여러 차례 침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정부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는 왜구의 침략에 대한 대책으로 성벽을 쌓는 등의 방어책을 마련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왜구의 약탈을 막지 못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고려 정부가 왜구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고려 정부는 왜구의 침략에 대해 무력했고, 결과적으로 고려 백성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고려의 무능한 대응으로 인해 백성들은 이중고를 겪었던 것이다.
1.4. 막부와 공민왕의 갈등 해결 시도
막부와 공민왕의 갈등 해결 시도는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공민왕은 막부에 항의하며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부는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공민왕 15년에 왜구가 고려를 재차 침략하자, 공민왕은 이에 대해 항의했다. 하지만 막부는 이를 오히려 원나라 황제의 지시로 잘못 알아듣고 당황했다. 이에 막부는 공민왕의 항의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