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구약성서와 생명공학
1.1. 다시 읽는 창조 이야기
생명공학의 연구성과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인간 복제 문제이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 과정을 생략한 채로 단순히 체세포만의 복제에 의한 무성생식 및 그에 근거한 복제 인간의 생산은 하나님의 생명주권(시 139:13~16; 욥 10:8~12)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의해서 창조 되어야만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로서 의미를 가지며 복제하여 스스로를 창조의 주체로 여기려 한다면, 그것은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교만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나 다를바가 없고,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성과 대를 높이 쌓아올려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생명 주권-성과 생식력을 통한번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간 복제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후에 그에 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서 배아복제가 승인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 시키거나 건전한 인류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이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성서적 관점을 나타낸 것이다. 저자는 인간 복제와 배아복제 등의 생명공학 기술이 하나님의 생명 주권을 침해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창조 신앙과 생명의 존엄성을 근거로 한 것이다.
1.2. 생명공학과 성서윤리
생명공학의 연구성과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인간 복제 문제이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 과정을 생략한 채로 단순히 체세포만의 복제에 의한 무성생식 및 그에 근거한 복제 인간의 생산은 하나님의 생명주권(시 139:13~16; 욥 10:8~12)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의해서 창조 되어야만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로서 의미를 가지며 복제하여 스스로를 창조의 주체로 여기려 한다면, 그것은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교만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나 다를바가 없고,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성과 대를 높이 쌓아올려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생명 주권-성과 생식력을 통한번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간 복제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후에 그에 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서 배아복제가 승인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 시키거나 건전한 인류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생명공학과 성서윤리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많으며, 하나님의 창조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생명공학이 발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2. 구약성서의 경제 윤리와 사회 정의
2.1. 사회정의
'사회정의'는 젊은층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대학생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았거나, 들어보았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때문에 다른 층에 비해서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정의라는 단어는 왜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뉴스에서 위험한 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 시민들을 보면 "아직 정의는 살아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오늘날 이러한 정의를 찾아보기는 힘들게 되었다. 정의로운 행동이 자신에게 피해로 다가오는 모습들을 보아오던 사람들이 정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정의를 실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더욱 더 정의라는 단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은, 도덕적인 정의, 진정한 정의, 사회 속에서의 정의 등 여러 정의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책들을 읽고 독자들이 생각하면서 일깨워지는 계기를 통해서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곧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축으로 성장하면서, 옳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 그것들을 추구해 갈 때 이 사회의 미래가 얼마나 밝을지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침체되고 어두운 상황 속에 있는 사회를 향해 던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다시 이 사회가 밝아지고 행복해지는 한 줄기 희망이며 그 시작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2.2. 빈익빈 부익부 문제
최근 어느 기업의 광고에서는 '사람이 미래다' 라는 문구를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였다. 이러한 광고를 보면서, 기업이 이러한 광고를 하여 얻게 된 이익을 보면서 현재 우리 기업은 기술, 정보, 자본, 상품 등의 경쟁력에서 사람이라는 요소로의 경쟁력으로 변화된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최근 기업의 문화는 인재를 중요시하고 있는 분위기 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분위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근로조건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롯데리아의 근로조건, 편의점의 근로조건 등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근로조건은 대부분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에 의해서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취업시장이 좁고 청년실업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문제일 것이다. 사용자가 불합리한 근로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일할 사람들은 많이 있다는 논리로 악 이용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있는 자들을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없는 자들은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어쩔 수 없는 삶을 살면서 항상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성공을 위해서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기주의에 빠져있다.
경기가 어렵고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혼자 살아가는것만으로도 벅찬 사회에서 이러한 이기주의는 당연한 결과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우리의 이기적인 인간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 정부와 국민들이, 기업과 노동자들이 이기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공존의 절대 원칙인 배려라는 열쇠를 통해서 이 현실을 극복하여야 한다.
3. 구약성서와 자연
3.1. 구약성서의 시간과 종말 그리고 생태학
시간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운행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시간의 본질 또는 시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까닭은 시간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요 그 지나온 길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삶과 자연계 안에 새겨진 시간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삶이 가능한 것이다.
구약 성서가 말하고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의 시작과 진행 과정 및 끝(종말)에 관한 신학적인 반성이 구약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빛과 더불어 하나님의 맨 처음 창조물에 해당된다. 아울러 빛과 시간의 창조는 이후에 이어질 다른 모든 창조의 시발점을 이루는 것이요 엿새 동안 이루어지는 창조의 시간적인 연속을 가능케 하는 사건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시간은 철저하게 자연계속의 천체의 운행을 통하여 그 모습이 드러난다. 태양과 달을 통해 한해의 시작과 끝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태양과 달의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