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고대 체육사 및 철학
1.1. 고대 그리스의 체육
고대 그리스의 체육은 제전 경기를 통해 전 그리스의 친선과 단결을 도모했다. 대표적인 4대 제전 경기는 피티아, 이스트미아, 네메아, 올림피아제가 있고 경기 기간에는 전쟁을 중지하고 제전경기에 참가하여 평화에 기여했다. 이를 통해 민족 단결과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였고, 근대 올림픽 제창과 스포츠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1.2.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체육관
스파르타에서는 전사 양성,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 체육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군사적인 성격이 강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어린 나이부터 체육 훈련을 받았는데, 이는 건강하고 강인한 군인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스파르타 소년들은 7세부터 국가 훈련소에 입소하여 체조, 달리기, 투척경기 등의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극단적인 훈련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강인한 군인이 되었지만,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무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스파르타 체육은 국가의 군사력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아테네에서는 군사적인 목적과 더불어 진선미를 추구하는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이 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 체육의 목적이 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체력, 정신력, 미의식 등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하였다. 특히 아테네 체육은 전인적인 교육이라는 이상을 지향하였으며, 이를 통해 아름답고 고결한 인간 형성을 목표로 하였다. 아테네의 체육교육은 단순히 신체적인 훈련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수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체육교육이 덕성과 지성의 발달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테네의 체육은 균형 잡힌 인격 형성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체육관의 차이는 전자가 국가의 군사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개인의 전인적 발달을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스파르타 체육은 강인한 군인 양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아테네 체육은 아름답고 고결한 인간상을 지향하였다고 볼 수 있다.
1.3. 로마시대 체육의 변화
로마시대 체육의 변화는 크게 전기 로마와 후기 로마로 나뉘어 설명할 수 있다. 전기 로마에서는 군대식으로 체육을 실시하여 연병장에서 훈련을 하는 방식으로 체육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원형연무장인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를 하는 관중 스포츠가 시작되었고 점차 확산되었다.
그러나 후기 로마에서는 전반적으로 체육활동이 쇠퇴하게 되었다. 원형경기장인 키르쿠스막시무스와 콜로세움에서 직업경연자의 경연이 성행하면서 체육은 오락적인 성격이 강해졌고, 탈 정치의 수단, 국가 정치 안정과 유지의 기능, 오락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로마 스포츠는 스파르타, 아테네와는 달리 자극적이고 유혈 스포츠가 성행하였으며, 신전을 비홋한 많은 신들의 성역이 파괴되면서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이런 모든 것을 금지하고 결국 올림픽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중세 기독교에서 스포츠 문화 금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편 로마 체육 사상가로는 갈렌과 유베날리스가 대표적이다. 갈렌은 의학자로 로마의 직업적인 운동선수들을 비판하며, 과도한 운동과 과식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유베날리스는 시인으로 지배계급의 사치스러운 생활상을 비판하며, 심신이원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 강조하였다.
2. 중세 체육사 및 철학
2.1. 수도원 교육과 체육
중세 시대 수도원 교육은 체육 개념을 부정하고 적대적으로 인식하였다. 수도원에서는 농사짓거나 청소하는 노동 자체가 체육이며, 그 외의 모든 운동은 신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였다. 수도원의 교육 내용은 기도문 암기, 찬송가 부르기, 신학 공부 등이 주를 이루었고, 7개의 교양 과목도 배웠다. 이러한 수도원의 교육은 체육과 신체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일부 스콜라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하게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신체적 건강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건전한 정신을 위해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신체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2.2. 기사 교육과 체육
기사는 봉건 사회의 지배계급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기사도는 귀족의 도덕성과 예의범절을 포함한 규범이었고 오늘날 스포츠맨십으로 계승되었다. 기사의 주된 임무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기사교육은 전쟁과 군사적 성격이 강했고 기사 체육은 교육과정의 중핵적인 역할을 맡아서 체육활동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신체의 정신과의 조화를 갖추기 위한 것은 아니고 계승된 정신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개인적인 역량을 개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