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중앙대 다빈치 예술여행 보고서 족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1.1.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
1.2. 몬드리안의 생애와 변화
1.3. 몬드리안의 화풍, 신조형주의
1.4. 결론
2. 전범위 총정리
2.1. 예술이란 무엇인가
2.2. 중세, 르네상스, 플랑드르
2.3. 고전주의
2.4. 19세기 유럽 미술의 큰 흐름
2.5. 인상주의
2.6. 구상에서 추상으로
2.7. 반예술의 등장
2.8. 남김없이 파괴하고 해체하라
2.9. 클래식 음악
2.10. 오페라와 발레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1.1.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은 추상회화 중에서도 매우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식을 특징으로 한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과 검은색, 회색, 흰색의 무채색만을 사용하여 캔버스를 수직과 수평선으로 구분하여 구성한 작품이 대표적이다.
몬드리안은 자연을 관찰하여 그 본질적 요소인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기본 색채만을 추출하여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관조와 균형, 조화를 담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작품 세계는 '신조형주의'라는 새로운 추상회화 양식을 개척하였다. 몬드리안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검은색 수직, 수평선들이 캔버스를 구분하고 그 안에 기본 삼색들이 놓여 있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그의 주장대로 순수한 미술 언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치며 널리 활용되고 있다.
1.2. 몬드리안의 생애와 변화
피에트 몬드리안(1872년~1944년)은 네덜란드의 화가로, 추상회화 중에서도 특히 신조형주의를 이끌어나간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엄격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왔는데, 이는 그의 초기 신조형주의의 엄격한 원칙 고수에 영향을 주었다.
본래 몬드리안은 자연미를 중시하는 인상파와 유사한 작품을 주로 그렸으나, 1911년 입체파의 그림을 접하면서 변화하게 된다. 선과 면을 중시하는 입체파의 그림에서 그는 기초 조형요소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의 나무 회화들을 살펴보면 1908년~1913년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의 화풍이 인상파에서 추상화적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의 나무, '붉은 나무'는 강력한 색체대비와 생동감 있는 나무의 형상을 표현했지만, 후기의 나무 '꽃피는 사과나무'는 나무의 형상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최소한의 요소만을 남겼으며 강렬한 색의 사용도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1914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네덜란드에 머물게 된 몬드리안은 이때부터 우리가 아는 직선만을 활용한 그림을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10년~1916년은 신지학 클럽에 가입하였을 정도로 몬드리안이 신지학의 영향을 깊게 받은 시기였다. 이 시기에 신지학의 특징인 '이원성'이 몬드리안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원성이란 사물에서 발견되는 서로 대립적인, 수평적인 대립 상태를 말한다.
1917년 네덜란드에서 여러 화가들과 연합해 『데 스틸』이라는 그룹을 형성하였고, 몬드리안은 초기 데 스틸의 비전을 구현하고 기하학적 추상 조형의 선두주자로서 그룹명과 같은 이름인 '데 스틸' 잡지를 출판해 현대예술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수 있도록 신조형주의 원칙과 이론을 보급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몬드리안은 네덜란드를 떠나 파리에서 그의 작품생활을 이어가다, 대각선을 도입에 대한 논의로 인해 데 스틸과 멀어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뉴욕에 이주하게 된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럽에 비해 직각으로 구획된 빌딩과 도시기획이 그가 추구하던 신조형주의에 부합하였고, 자유로운 뉴욕 분위기와 재즈음악의 영향을 받아 리듬감을 더하고 검은색 선만에서 벗어나 삼원색의 컬러선을 사용하였다. 그의 연작 '뉴욕시티'를 보면 엄격히 유지한 검은 선에서 벗어나 컬러 선 만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그의 제일 가는 대표작이라 평가받는 '브레드웨이 부기우기'에서 브레드웨이는 뉴욕의 거리 이름이며 부기우기는 제즈의 일종이다. 이를 통해 그가 뉴욕, 재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화풍을 계속 발전시키던 몬드리안은 1944년 뉴욕에서 폐렴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였다.
1.3. 몬드리안의 화풍, 신조형주의
몬드리안의 화풍, 신조형주의는 입체파와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몬드리안은 사진이 대중들에게 보급되면서 회화가 점차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그는 순수성과 변하지 않는 본질을 추구하며, 검은 수직선과 수평선, 빨강, 파랑, 노랑인 삼원색과 무채색을 기본으로 하는 회화로 순수성과 직관성을 추구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절대적인 추상을 추구한 몬드리안의 사상이 담겨있다. 그는 우연성이나 주관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하나의 질서로 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몬드리안의 이원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본질적인 대립관계를 중시했는데, 이러한 대립관계를 통해 정적 균형, 절대적인 조화와 균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당시 신 플라톤주의자인 솬마커스의 영향을 받은 몬드리안은 남성을 수직선으로, 여자를 수평선으로 제시해 대비하였는데, 이는 자연의 근원적인 대립 이분법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이러한 대비 성질은 삼원색과 무채색이라는 대립되는 조형요소를 사용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몬드리안이 추구한 대조, 그에 따른 균형과 조화를 '차가운 추상'이라고 하며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은 차가운 추상의 대표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그림은 검은 색의 선이 교차하며 구역을 형성하고 색은 그 구역에 귀속되는 그리드형식의 초기 신조형주의를 보여주며, 몬드리안의 화풍은 '브레드웨이 부기우기'와 같이 컬러선이 사용되면서 후기의 신조형주의로 변화하였다.
1.4. 결론
몬드리안 화풍이 여러 디자인 분야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조형요소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삼원색과 무채색, 수직, 수평선만을 사용한 회화가 본질만을 드러내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
참고 자료
박한힘, 「몬드리안 작품의 조형적 특성과 패치워크 기법을 이용한 패션디자인 제안 연구 -콤포지션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국기초조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권호, 한국기초조형학회, 2020, 83-86쪽
박한힘, 「몬드리안 작품의 조형적 특성과 패치워크 기법을 이용한 패션디자인 제안 연구- 콤포지션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국기초조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권호, 한국기초조형학회, 2020, 83-86쪽
김연화, 「데스틸(De Stijl) 그룹이 지닌 신조형주의 이념구축과 양식으로서의 프라퍼갠더(Propaganda)」, 한국디자인포럼 vol,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2011, 327-336쪽
최선형, 구영민, 「다이아몬드 구성의 도해(圖解)를 통한 근대건축 공간구축에 관한 연구 - 몬드리안과 반 되스버그의 사선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제40권 제2호, 2020 , 308 – 311쪽
홍창호,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후기추상화에 나타난 신지학의 영향」, 유럽문화예술학논집 제22집, 2020, 125-138쪽
추상화의 분류 – 차가운 추상, EBS 동영상 (2008.12.12)
김형진, 현대속의 몬드리안, 한솜미디어,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