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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관계 및 법적 쟁점
1.1. 사실관계
A는 1997. 12. 4. 술에 취한 채 화장실을 가다가 중장을 입어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고 시멘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다시 머리를 바닥에 찧어 경막외출혈상을 입고 보라매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었다. A는 甲,乙,丙을 포함한 의료진에 의하여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의식이 회복되어 있었으나 뇌수술에 따른 뇌부종으로 자가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호흡보조장치를 부착한 채 계속 치료를 받고 있었다. A의 처 丁은 금은방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후 17년 동안 무위도식하면서 술만 마시고 가족들에 대한 구타를 일삼아 온 A가 살아남아 가족들에게 계속 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사망하는 것이 낳겠다고 생각하고 1997. 12. 6 주치의인 3년차 수련의 乙 에게 도저히 더 이상의 치료비를 추가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을 요구하였다. 乙은 丁이 여러 차례의 설명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치료비 등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퇴원을 고집하자 상사인 전문의 甲에게 직접 퇴원 승낙을 받도록 하였고, 甲은 乙로부터 위과 같은 丁의 요구사항을 보고받은 후, 자신을 찾아온 丁에게 A가 퇴원하면 사망한다고 설명하면서 퇴원을 만류하였으나 A가 계속 퇴원을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여 乙에게 A의 퇴원을 지시하였다. 丁이 퇴원수속을 마치자 乙은 1년차 수련의 丙에게 A를 집으로 후송하도록 지시하였고, 그에 따라 丙과 丁등이 A를 중환자실에서 구급차로 옮겨 싣고 A의 집까지 데리고 간 다음, 丙이 丁의 동의를 받아 A에게 부착하여 수동 작동중인던 인공호흡보조장치와 기관에 삽입된 관을 제거하여 A로 하여금 호흡정지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1.2. 논점의 정리
1.2.1.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부는 다음과 같다.
먼저, 丁은 남편인 A에 대해 민법 제826조에 따른 부부간의 부양의무를 지므로 법령에 의해 보증인 지위가 인정된다. 이에 따라 丁이 A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에 대해 부진정부작위범의 문제가 된다.
부진정부작위범은 부작위에 의해 작위범의 구성요건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소극적인 부작위에 의한 범행이 적극적인 작위에 의한 구성요건 실현과 동등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작위자에게 보증인적 지위가 있어야 하고, 보증인의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구성요건의 실현과 동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 있어야 한다.
사안의 경우 살인죄는 순수한 결과범이므로, 결과 발생만 있으면 구성요건이 충족되며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은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보증인 지위가 인정되어야 한다.
한편, 丁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한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병의 상태, 치료내용 및 경과, 치료비 부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안의 경우 당시 부담한 치료비가 260만원에 불과하고, 담당의사들의 계속적인 퇴원거부에도 불구하고 丁이 퇴원을 고집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丁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丁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죄책이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1.2.2. 의사 행위의 성격
의사 행위의 성격은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에 따라 달라진다.""
어떠한 범죄가 적극적 작위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음은 물론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하는 소극적 부작위에 의하여도 실현될 수 있는 경우에, 행위자가 자신의 신체적 활동이나 물리적·화학적 작용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타인의 법익 상황을 악화시킴으로써 결국 그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기에 이르렀다면, 이는 작위에 의한 범죄로 봄이 원칙이다.""
그러나 행위자가 악화된 법익 상황을 다시 되돌이키지 아니한 점에 주목하여 부작위범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의사 甲과 乙은 피해자의 퇴원을 허락하고 지시하는 등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피해자의 사망을 야기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작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의사들의 행위를 작위로 평가할 경우 부작위범에 비해 책임구조가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원심과 같이 이들의 행위를 부작위로 평가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1.2.3. 보증인 지위 및 보증인 의무
보증인 지위 및 보증인 의무는 부진정부작위범의 성립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보증인 지위란 부진정부작위범에 있어서 부작위가 작위와 같이 평가될 수 있기 위하여 부작위범이 결과의 발생을 방지해야 할 의무가 인정되어야 하는 지위를 말한다. 이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①법익의 담당자가 위협되는 침해에 대하여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고, ②부작위범에게 그 위험으로부터 법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 즉 작위의무가 있고, ③부작위범이 이러한 보호기능에 의하여 법익침해를 야기할 사태를 지배하고 있을 것을 요한다.
보증인 지위의 발생근거에 대해서는 학설상 논란이 있었다. 형식설은 작위의무의 실질적 내용보다는 형식적 발생근거만을 문제삼아 법령, 계약, 조리, 선행행위 등을 근거로 보증인 지위를 확정하고자 하였으나, 이는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실질설은 작위의무의 기능적 관점에서 법익보호의무와 위험원 감시·감독의무로 나누어 보증인 지위를 확정하고자 하였지만,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절충설이 타당한데, 이는 형식적 발생근거와 실질적 작위의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증인 지위를 확정하고자 하는 견해이다.
사안에서 피고인 丁은 남편 A에 대해 민법 제826조의 부부간 부양의무를 지므로 법령에 의해 보증인 지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의사 甲, 乙, 丙의 경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0조상 응급환자의 생명 보호 의무가 보증인 의무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인다. 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