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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과양택의 개념과 풍수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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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음택과양택의 개념과 풍수이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풍수지리설
1.1. 풍수지리설의 개념
1.2. 한국의 풍수지리설
1.3.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
1.4. 도참사상(圖讖思想)의 개념과 성격
1.5. 도참사상의 기원과 한국의 도참
1.6. 고려시대에 나타난 지리도참의 모습
1.7. 풍수지리설과 왕건의 고려 건국
1.8. 풍수지리설의 정치적 활용
1.9. 음양오행론과 기사상(氣思想)
1.10. 풍수지리설의 구성
1.11. 풍수지리설의 이론

2. 민속신앙과 금기
2.1. 금기의 정의와 원리
2.2. 금기의 대상
2.3. 한국 금기의 사례
2.4. 금기 사례 예시

3. 점과 민속
3.1. 점(占)의 개념과 방법
3.2. 점복(占卜)신앙
3.3. 점복의 다른 이름과 뜻
3.4. 점복 및 점복자의 종류

4. 성기신앙과 도깨비
4.1. 성기신앙의 정의 및 분류
4.2. 성기신앙의 목적과 형식
4.3. 성기신앙의 민속적 유적/유물
4.4. 도깨비의 허상과 실상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풍수지리설
1.1. 풍수지리설의 개념

풍수지리설은 땅과 인간의 관계, 즉 산 · 물 · 방위 및 인간 4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만물이 기(氣)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만물 중의 하나인 땅도 지기(地氣)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지기에 대해 음양과 오행, 그리고 주역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이 풍수지리설이다.

풍수지리설은 고대로부터 인간이 주거취락을 택하는 택지관념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 후 국가가 성립되면서부터는 수도를 건설하고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여 도로 · 군사 및 행정조직을 정비하였는데, 풍수지리설은 이 같은 지리적 관념에 근거하여 발전한 논리체계였다.

풍수지리에는 도성(都城) · 사찰(寺刹) · 주거(住居) 등의 거주지를 정하는 양택풍수와 무덤자리를 정하는 음택풍수가 있다. 풍수지리설의 핵심은 사람이 산과 물과 방위를 관찰해 자신에게 길한 땅인 명당을 찾는 것이다. 땅 속에 흐르는 음양의 생기가 농축된 곳을 혈이라 하고 그 앞의 평평한 곳을 명당이라 하지만 혈과 명당을 통틀어 명당이라고도 한다.


1.2. 한국의 풍수지리설

한국의 풍수지리설은 자체 발생설과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로 크게 나뉜다. 자체 발생설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단군신화에까지 소급하여 해석하는 견해부터 고대 부족국가가 성립할 당시 개인의 주택이나 부족의 정착지뿐만 아니라 수도를 선정할 경우 지세가 험한 곳이나 정착생활을 위해 토양이 비옥한 곳에 기지를 선정하려는 방법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견해가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은 삼국시대로 보는 견해와 통일신라시대 이후 당과의 문화적 교류가 빈번하던 때에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성왕 또는 그 이전에 이미 풍수지리설은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설을 전국에 걸쳐 확산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은 도선(道詵, 827-898)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발달한 참위설을 골자로 하여 지기쇠왕설 · 산천순역설 및 비보설 등을 주장하였다. 도선의 풍수지리설은 왕건에게 전해지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정에 있어서 군사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호족이나 일반백성들의 민심을 수습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논리로 작용하였다.


1.3.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풍수지리설은 땅과 인간의 관계, 즉 산·물·방위 및 인간 4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만물이 기(氣)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땅도 지기(地氣)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이에 대해 음양과 오행, 주역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이 풍수지리설이다.

도참은 미래의 길화흉복을 예측하는 예언서 또는 미래기라고 할 수 있으며, 신비적이고 미신적인 성격이 짙은 사상체계이다. 중국에서 기원한 도참은 한국에서 특히 풍수지리에 의한 도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사상이 존재하였고, 신라 말기부터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이 결합된 모습인 지리도참사상이 등장하여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크게 성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도선을 중심으로 한 지리도참사상이 두드러졌다. 도선은 신라 말기 도참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사상은 왕건의 고려 건국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도선의 예언은 왕건의 탄생과 관련된 신비성과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여 왕건을 교체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활용되었다.

이후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지리도참사상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정종의 서경천도계획, 성종·현종 때의 동경 설치, 문종 때의 남경 설치 등 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지리도참설에 기반하고 있었다. 특히 인종조의 묘청 난은 지리도참설이 짙게 깔려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지리도참사상은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4. 도참사상(圖讖思想)의 개념과 성격

도참사상(圖讖思想)은 도(圖)와 참(讖)을 합친 개념으로,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상징, 표징, 신호, 징후, 전조 등을 뜻하며, 은어와 밀어의 상징적 언어로 장래의 길화흉복을 예언하는 신비적, 미신적 성격이 강한 사상체계이다.

도참은 중국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는 양한(兩漢)시대에 참위설 즉, 도참설이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말부터 도참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풍수지리설과 결합된 지리도참사상이 크게 성행하였다.

도참사상은 천문, 음양오행, 주술, 도교, 불교 등 다양한 분야와 관계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풍수지리에 의한 도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도참은 중국과 한국의 정치·사회사의 이면과 때때로 밀접히 관련되었으며, 종종 신비적 언설에 의하여 인심을 충동 혹은 지배하여 여러 가지 기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한왕조가 일어나고 망하는 역성혁명의 큰 변동기나 불안한 시국에서 특히 많이 나타났으며, 정치운동 또는 민중운동의 지도자들이 도참사상을 이용하여 정치적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작하기도 했다.


1.5. 도참사상의 기원과 한국의 도참

도참사상의 기원과 한국의 도참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삼국시대 말기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도참은 중국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참위설 즉, 도참설이 유행한 것은 양한(兩漢)시대였지만, 이보다 앞서 진참(秦讖)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신탁, 몽조(夢兆), 부참(符讖) 등의 뜻으로써 일종의 하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도와 참을 합친 도참이 왕망전(王莽傳) 평제원시(平帝元始) 4년조의 기사에 처음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식의 도참이 한국에서 언제부터 유행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삼국시대 말부터 도참이 존재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고려 전에 보면 《고려비기(高麗秘記)》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비기》란 고구려의 풍수도참서로서 찬자를 알 수 없고 전해지고 있지는 않으나 《삼국사기》에 인용된 내용을 보면 고구려의 멸망을 예견한 기록이 보인다. 또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를 보면 의자왕 20년(660)에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는 백제는 달이 차서 장차 기울것이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이 번성할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이는 그 뒤 왕조의 흥망을 예언하는 도참의 효시가 되었다.

신라의 경우, 통일신라 말경에 최치원의 참설이라고 전해지는 '곡령송청계림엽황(鵠嶺松靑?林葉黃)'이 있는데, 이는 고려의 흥기를 예언한 것이다. 즉, 곡령은 개성의 송악산의 다른 이름이며, 계림은 경주의 숲으로써 신라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고려는 흥하고 신라는 망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신라의 망과 고려의 흥을 예언한 참언으로는 '왕창근 경문참'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도참사상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도참사상이 풍수지리설과 결합된 모습인 지리도참사상이 등장하여 크게 성행하였고, 고려의 정치,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1.6. 고려시대에 나타난 지리도참의 모습

고려시대에 유행한 지리도참의 모습이다.

신라 말의 대표적인 지리도참가인 도선스님은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을 결합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의 화엄사에서 승려가 되었고 유명한 사찰을 다니며 수행하다가 846년 곡성 동리산의 혜철로부터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도선의 저서로는 「도선풍수비기」, 「지리도」, 「도선비기」, 「도선기」 등이 있다.

도선은 875년 "지금부터 2년뒤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고, 이후 실제로 왕건이 송악에서 태어났다. 이에 고려의 역대 왕들은 도선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도선의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려의 숙종은 도선을 대선사로 추증하고 왕사를 추가하였으며, 인종은 삼각국사로 추공하였고, 의종은 그를 위한 비를 세웠다. 도선이 결정한 자리에 세워진 절이나 탑을 비보사탑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많은 사건들에서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이 결합된 지리도참의 모습을 발견할 수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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