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한국 기독교회사 1,2
1.1. 서론
현재까지 한국기독교회사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으며, 그 연구의 결과로서 수많은 저서들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한국기독교회사 전체를 범위로 다루고 있는 통사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한국기독교회사의 연구 현실 가운데 박용규 교수는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교회사 전체를 한 눈에 통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본서를 통해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저서가 가지고 있는 사상적 통일성에 기초한 내용적 흐름에 있어서 이지, 각 권의 양이 둘 다 천 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이기에 결코 그 양에 있어서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본서의 방대한 분량은 인용된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변증하고자 한 저자의 역사 학자로서의 성실함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증거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기록자인 사가(史家)가 어떤 관점 즉 사관(史觀)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좌우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 박용규 교수는 「한국기독교회사」 1권의 '서론'에서 '한국교회사 이해와 연구 방법론'을 다루며, 한국교회사 연구의 특성을 사관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백낙준의 '선교사관'을 소개하고 있었다. 백낙준의 「한국개신교사」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1832년부터 1910년까지의 한국개신교사를 연구한 것이다. 이 논문에 나타난 선교사관은 백낙준의 제자이기도 한 민경배에 의해 비판되었다. 민경배 교수의 「한국기독교회사」는 1970년대에 나온 여러 형태의 한국교회사 연구서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민족교회사관'을 제시하고 방대한 자료들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 다음은 1979년에 발표된 주재용 교수의 「한국기독교 백년사」이다. 이는 '민중사관'의 표출로서 '엘리트-지식계층'을 대상으로 한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고 있다. 1980년대에 와서는 이만열을 중심으로 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실증주의사관'이 등장하여 한국사와 기독교사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교회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박용규 교수는 한국교회사의 복음주의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그 연구 결과의 하나로서 본서가 저술된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복음적 관점이라는 새로운 측면에서 한국교회사를 서술함으로, 이후 계속될 한국교회사 연구에 새로운 물고를 열었다는 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1.2. 한국 기독교회사의 이해와 연구 방법론
한국 기독교회사의 이해와 연구 방법론은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접근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백낙준의 '선교사관',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 주재용의 '민중사관', 이만열의 '실증주의사관'이 대표적이다.
백낙준의 '선교사관'은 1832년부터 1910년까지의 한국 개신교사를 연구한 것으로, 선교사들의 역할과 기여에 주목하였다. 반면, 민경배 교수의 '민족교회사관'은 그의 제자인 백낙준의 관점을 비판하며, 한국 교회가 자생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970년대에는 주재용 교수의 '민중사관'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엘리트-지식계층'을 대상으로 한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이어 1980년대에는 이만열을 중심으로 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실증주의사관'이 대두되어, 한국사와 기독교사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이처럼 한국 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다양한 관점과 접근이 시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박용규 교수의 '복음주의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복음적 관점에서 한국 교회사를 서술함으로써, 앞으로의 한국 교회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기독교회사 연구는 역사가들의 다양한 사관에 따라 그 내용과 초점이 달라져 왔다. 이는 역사가의 관점과 해석이 역사 기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회사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1.3. 개신교 전래 이전 서양 종교와의 접촉
중국과 아랍, 몽골 등을 통한 접촉의 가능성, 임진왜란 이후 서양 문화와의 접촉, 조선 천주교의 전래과정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주로 개신교 선교사들의 정식적인 입국 이전에 있었던 가톨릭의 전래와 다양하게 이루어진 접촉의 역사를 논하고 있다.
먼저 중국과 아랍, 몽골을 통한 접촉의 가능성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와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오랜 기간 교류가 이루어져 왔으며, 그 과정에서 불교,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 외래 종교들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이러한 전래 과정에서 한반도와 조선에도 그 영향이 미쳐 왔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구려와 신라는 불교를 수용하면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기에 이 시기부터 중국을 통한 서양 종교 접촉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서양 문화와의 접촉도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명나라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양 문물을 접하기 시작했다. 특히 천주교 선교사들이 명나라로 들어와 활동하면서 조선에서도 그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은 서양 문물과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는 이후 개신교 전래를 준비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 천주교의 전래과정을 살펴보면, 1784년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그루몽 신부에게 영세를 받으면서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되기 시작했다. 그 후 순조, 헌종 연간에 걸쳐 조선 천주교회가 성장하였고, 선교사들의 활동이 점차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개신교 선교사들의 정식적인 입국 이전부터 천주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서양 종교와의 접촉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1.4. 한국 개신교전래의 준비
1832년부터 1884년까지는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정식으로 입국하기 전의 준비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미 많은 접촉과 노력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가 한국에 공식적으로 전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한국 개신교 선교의 준비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과 아랍, 몽골 등을 통한 간접적인 접촉의 가능성, 임진왜란 이후 서양 문화와의 접촉, 초기 천주교의 전래와 확산 등이 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은 점차 서양 문화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선교사들 또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1832년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그루몽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은 것이 개신교 선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꾸준히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고, 1866년 로버트 J. 토머스, 1877년 알렌 등 선교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개신교 전래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
1884년 이후에는 선교사들이 정식으로 입국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의 준비 과정을 통해 한국에 이미 성경이 보급되어 있었고, 한국인 개종자들도 있었다는 점은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5. 선교사 입국과 복음의 전래
1884년부터 1900년까지 있었던 '선교사 입국과 복음의 전래'에 대해서는 각국 선교사들의 입국, 선교사들의 신학적 특성, 선교정책, 수난과 갈등 등 초기 교회들이 겪었던 역사의 장면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 초기 선교사들은 성경의 무오를 믿는 바른 성경관에 기초한 복음주의적 전통에 서 있는 자들이었으며,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복음주의적 전통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역사 가운데 간섭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초기 선교사들이 기독교 선교에 방점을 찍었던 반면, 서양 문물의 전래와 수용에 있어서는 선교사들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는 선교와 문화에 대한 당시 서양 선교사들의 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1884년부터 1900년까지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복음주의적 신학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에 힘썼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한국교회의 복음주의적 전통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후 전개된 한국교회의 역사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6. 한국교회 부흥운동
한국교회 부흥운동은 1900년대 초반 한국교회에서 일어난 큰 영적 각성운동이었다. 이 부흥운동은 복음 전파와 신앙의 성장을 통해 한국교회의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도약을 이루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평양대부흥운동은 선교사들과 한국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