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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간호학과 이론
간호학은 이론, 실무, 연구가 밀접하게 연결된 유기적인 학문이다. 이론은 간호실무의 기반을 제공하며, 간호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간호이론은 간호의 필수적인 개념인 인간, 환경, 건강 및 간호 간의 관계를 진술한 명제로 구성되어 있다.
간호이론은 간호실무를 이해하는 토대를 제공하고, 간호 실무를 안내하며, 간호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다. 간호이론은 개념과 명제들로 구성되어 있어 간호 실무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신뢰할 만한 이론과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실무의 발전은 전문직으로서 간호의 발전방향을 제시한다.
간호이론의 발전과정은 간호전문직의 자율성, 간호목적의 일관성, 유용한 이론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의사소통과정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간호에 대한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 지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간호이론은 매우 중요하다.간호이론은 간호 실무라는 현상의 속성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추상적인 관계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간호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한다. 간호이론은 간호의 개념, 명제, 가설 등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간호실무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론의 개발과 검증이 필수적이다.
간호이론은 간호 실무의 기반이 되며, 실무를 안내하고 간호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다. 간호이론은 간호 실무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간호 실무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간호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여 지속적인 학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간호이론은 간호 실무와 연구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무를 수행하고, 실무에서 얻은 경험적 지식을 이론화하는 과정을 통해 간호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간호이론은 간호 실무와 연구의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간호학문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2. 나이팅게일의 간호 개념
나이팅게일의 간호 개념은 다음과 같다.
나이팅게일은 인간을 질병에 대처할 자연적인 회복력을 지닌 대상이자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하였다. 안전한 환경 내에 있는 한 회복은 환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환경은 나이팅게일 이론의 기본으로, 인간의 삶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상황과 힘으로 구성된다. 환경에는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로부터 간호사가 주고 받는 언어적 및 비언어적 상호작용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나이팅게일은 환경이 감염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보았다.
건강은 안녕한 상태이자 인간이 가진 모든 힘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며, 질병을 회복 과정으로 보았다. 건강은 환경적 건강 요인을 통해 예방함으로써 유지된다고 하였다. 건강간호는 질병이 있는 환자를 간호해 생존하게 하거나 죽을 때까지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간호는 자연이 환자를 치유할 수 있도록 환자를 최적의 상태로 놓는 것이다. 간호사의 역할은 치료를 방해하는 요소를 예방하고 자연적인 치유를 촉진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선한 공기, 광선, 깨끗한 물, 배수, 청결, 보온, 조용, 적절한 식이 등의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즉, 나이팅게일의 간호 개념은 환자의 자연적인 치유 과정을 최대한 돕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적절한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2. 나이팅게일의 간호이론
2.1. 이론의 배경
2.1.1.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생애와 업적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현대 간호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 간호사로, 간호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태리의 플로렌스에서 출생하였고, 부유한 영국의 빅토리아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부친으로부터 수학, 언어, 종교, 철학 등 광범위한 교육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나이팅게일은 귀족 사회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한 1837년 자신의 일기에 "신께서 나로 하여금 그의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종교적 소명 의식도 강하게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51년 나이팅게일은 독일의 카이세르베르트로 가서 간호 교육을 받았으며, 그 이후에도 병원, 자선기관 등 여러 기관에서 훈련을 받았고 간호관리자로서의 경험도 쌓았다. 1854년 나이팅게일은 시드니 경의 요청으로 38명의 간호요원과 함께 크리미아 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간호 분과를 조직하고 전자에서의 위생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당시는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존중이나 신뢰를 받지 못했으며 준비된 교육과정도 없었으므로 훈련받은 간호사나 적십자사의 도움을 받기가 무척 어려운 시기였다. 군대의 병실 상태가 열악했으므로 군인들은 상처 이외에도 동상, 기생충의 만연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수술용 탁자나 마취약도 없었다. 이처럼 열악한 상태에서 나이팅게일이 보여준 헌신적인 활동은 병사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부상병들은 자신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촛대를 들고 밤낮으로 가리지 않고 일하는 그를 "등불을 든 연인"이라고 불렀다. 나이팅게일은 스쿠타리에서 크리미안 열로 심하게 앓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1860년 전쟁 중 봉사의 대가로 받은 자금으로 성 토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