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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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목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칼빈과 어거스틴
2.1. 칼빈과 어거스틴의 비교
2.2. 최근 종교개혁 연구

3. 어거스틴
3.1. 새롭게 조명하는 어거스틴과 북아프리카 교회 영성
3.2. 어거스틴의 교회론
3.3. 어거스틴의 세례관
3.4. 어거스틴의 교회와 국가

4. 칼빈
4.1. 칼빈과 인문주의
4.2. 칼빈의 경건사상
4.3. 칼빈의 설교관
4.4. 칼빈의 그리스도인의 삶
4.5. 칼빈의 목회와 사회복지
4.6. 칼빈의 교회와 국가
4.7. 칼빈의 교회 정치 참여

5. 칼빈과 어거스틴
5.1. 칼빈과 도나투스 논쟁
5.2. 어거스틴과 칼빈의 예배관
5.3. 어거스틴과 칼빈의 교회 성장
5.4. 『신국론』과 『기독교 강요』의 교회와 국가
5.5. 어거스틴과 칼빈의 교회와 국가
5.6. 어거스틴과 칼빈의 국가관

6. 칼빈주의 국가관과 한국의 통일
6.1. 개혁주의 국가관과 통일
6.2. 평양대부흥운동과 남북 통일

7.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칼빈과 어거스틴의 비교 연구는 초·중세 기독교나 근대 유럽 기독교 문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우고자 하는 신학적 노력에 있어서도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어거스틴과 칼빈은 각각 기독교 제국인 로마가 몰락하던 시기와 중세 기독교 문명이 무너지고 유럽이 새로운 근대 사회로 재편되던 16세기 종교개혁 시기라고 하는 매우 드라마틱한 대 격동기에 그들 자신의 역사적 교회의 지도자로서 신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2. 칼빈과 어거스틴
2.1. 칼빈과 어거스틴의 비교

칼빈과 어거스틴의 비교"는 칼빈의 신학 형성에 있어 어거스틴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첫째, 칼빈의 사상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세 말과 종교개혁 초기에 전 유럽에는 어거스틴 르네상스가 풍미한 시기였기 때문에 칼빈은 이러한 신학적 토양 속에서 사상적 발전을 이루었다. 즉 칼빈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어거스틴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신학 사상을 발전시켜나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칼빈의 작품 속에 어거스틴 인용과 어거스틴 사상의 영향이 칼빈 사상 중심부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칼빈은 어거스틴을 "가장 순수하고 원시적 교회"의 선생으로 보았으며, 개신교 운동이 역사적 기독교와 연속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칼빈은 어거스틴 수용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어거스틴과 칼빈을 연관시켜 연구할 때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될 수 있다. 첫째, 어거스틴이 칼빈에게 미친 "영향(influence)"연구. 둘째, 칼빈의 어거스틴 "수용(receptio)"연구. 셋째, 어거스틴과 칼빈의 "비교(comparison)"연구이다.

특히 어거스틴과 칼빈의 "비교 연구"는,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칼빈과 어거스틴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방법론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이다. 1) 역사적, 사상적 배경. 2) 성경해석. 3) 기독교 강요와 신국론.

이와 같은 연구는 결국에는 21세기 아시아라고 하는 역사적 문맥 속에서 한국 기독교회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한 작은 교회사적 시도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2. 최근 종교개혁 연구

최근 종교개혁 연구는 내적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외적으로는 그 외연이 팽창되고 있는 추세이다. 먼저 내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연구하는 최근의 경향이 배타적인 종파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중세와 종교개혁, 그리고 역동적인 종교개혁 운동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상호 연계 속에서 포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후기 중세의 어거스틴주의 및 어거스틴 르네상스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며 종교개혁을 중세 말과 사상적 연속성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스콜라주의와 인문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을 중세 말 스콜라주의/인문주의와 연속성에서 이해하는 연구도 있다.

한편 외적으로는 종교개혁 연구 주제가 끊임없이 확대되었는데, 도그마나 신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16세기의 여러 일상사 연구로 확대하는 역사적 시도들이 있었다. 또한 16세기 종교개혁 교회에 대한 연구에서는 교회론과 관련된 연구들이 활성화되었고, 성경 해석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졌다. 게다가 종교개혁자들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 경향들을 종합해 볼 때, 최근의 종교개혁 연구는 중세 말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종교개혁의 토대를 추적하는 연구에서 시작하여 16세기의 역사적, 신학적, 맥락에 근거한 연구들이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과거에는 종교개혁을 독립적인 사건으로 바라보았다면, 최근에는 중세 말부터 이어져 온 사상적, 역사적 흐름 속에서 종교개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어거스틴
3.1. 새롭게 조명하는 어거스틴과 북아프리카 교회 영성

새롭게 조명하는 어거스틴과 북아프리카 교회 영성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발견된 디프약의 편지와 돌보의 설교문의 발견은 어거스틴의 신학과 목회의 무대가 되는 당시의 역사를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하도록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4세기의 북아프리카는 가톨릭교회와 도나티스트 교회로 크게 나뉘어 발전하고 있었다. 이 두 교회들은 모두 성경에 의해서 감동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영성과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또한 이 교회들은 초대 기독교 사상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서로 대조되는 경향을 대표한다. 그들은 그들의 교리에 있어서 달랐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태도에 있어서도 달랐다. 가톨릭교회에 비하여 도나티스트 주의자들은 북아프리카적인 배경을 조금 더 보존하고 있었다. 도나티스트 운동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에 시작되어 그보다 한 세기와 십여 년 정도 후에 발생한 반달족의 침입 때까지, 생동감 있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교회 운동으로 성장해 갔다. 도나티스트 운동은 그동안 순교자 숭배주의 혹은 천년왕국주의 운동 등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이 운동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자체의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광범위한 세계에 응답해 가면서 그들의 신학과 영성을 발전시켜간 운동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4세기를 걸쳐서 북아프리카 전체로 확대되었다. 4세기 초의 아비니티안 순교자들의 기록(Acts of the Abitinia Martyrs)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은 선택된 공동체를 모으는 것(collectam facere)이었다. 도나티스트 주의자들은 이 선택받은 공동체(collecta)의 이미지를 이스라엘의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이끌어냈다. 도나티스트 주의자들과 가톨릭 주의자의 영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자신을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로 보는 독특한 자기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택받은 공동체(collecta)라는 개념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와 관련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역사적 격변기에 하나의 역동적인 기독교 영성으로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4세기 북아프리카 교회의 발전과 영성을 고찰할 때, 그것과 어거스틴과의 연결성을 연구하기 위하여, 티코니우스에게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도나티즘의 신학과 영성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로 평가될 수 있다. 티코니우스의 영성은 도나티스트 운동을 하나의 기독교적 운동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티코니우스의 성경해석학이 어거스틴의 성경해석학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종교적 관용이 있었던 시기에 도나티스트 운동의 영성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티코니우스는 도나티스트 교회로부터 출교됨으로, 도나티스트 교회의 영성은 그 폐쇄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오히려 티코니우스의 개혁적 영성은 어거스틴을 통해 북아프리카의 범주를 넘어 보편 교회에 기여하게 되었다. 요컨대 어거스틴이 티코니우스로부터 배웠던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혼합된 교회라는 개념이다. 최후의 날에야 분리가 일어날 것이다. 어거스틴은 티코니우스의 대조적인 두 도성(civitates)이라는 개념으로 도나티즘을 비판했는데, 이때 그는 두 개의 대조적인 도성들이 사회학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도나티스트 운동의 영적 개혁자요, 그 때문에 도나티스트 교회로부터 출교당했던 티코니우스라는 선구자로부터 많은 관점들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2. 어거스틴의 교회론

우리가 어거스틴의 사상에 관해 연구할 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조직적인 신학 논문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작품을 저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의 교회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저작 전체를 유의해서 읽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지상의 상속이고 소유였으며, 그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던 것으로 확실히 믿었다. 어거스틴의 해석에 따르면, 열방의 국가들은 그리스도의 유산이었다.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도래하심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심으로 역사 안에서 성취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역사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간주되었고 하늘의 왕국과 동일시 되었다. 때문에 그는 구약에 나타난 예언의 성취를, 특별히 보편 교회의 확산을 통한 성취로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 이 관점에서 어거스틴은 사도 바울의 사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언급할 때에, 그것을 사랑 안에서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서의 교회는 어거스틴의 교회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에 관한 어거스틴의 다른 개념들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어거스틴은 교회가 그 전체로서 그리스도이 몸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비록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는 하지만 이 교회는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을 포함하는 혼합된 몸이다. 악한 자들은 심지어 이 세상의 종말까지 교회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어거스틴이 동일한 북아프리카의 신학자였던 티코니우스(Tyconius)에게 배웠을 것으로 보인다. 티코니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티코니우스를 따르면서 어거스틴은 급진적인 이원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거스틴의 사상 속에서 성령은 가시적인 교회(visible Church)와 관련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조성하는 생명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교회가 신앙 고백과 성례와 권위에 의해서 형성된 하나의 기구일 뿐만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감동된 조직적인 실체(corporate entity)라고 생각했다. 어거스틴은 성령을 교회의 구성원들을 묶는 내적 선물(internal gift)이라고 보았다.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은 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은 동일한 머리 아래에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게 된다. 이 점은 교회와 성령간의 관계에 대한 어거스틴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이 된다. ...


참고 자료

안인섭, 『칼빈과 어거스틴: 교회를 위한 신학』 (서울: 그리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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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 Meneill, 칼빈주의 역사와 성격,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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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경, 칼빈의 교육 사상에 대한 연구 : 제네바 아케데미를 중심으로, 總神大論叢, 2004, 제24집 2004(특별호), 333-362 .
정용철, 칼빈의 디아코니아에 대한 연구 : 제네바 사역을 중심으로, 2012.
강석훈, 칼뱅과 제네바 치리회 연구 : 칼뱅 전집(CO.) 21 중심으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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