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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우리는 사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카메라, 퓰리쳐 상, 외국의 유명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마 사진술을 처음 발견하고 발명한 사람들이 외국의 사람이며 한국에서는 사진작가, 사진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사진역사 전개는 서양과는 다른 독자적 과정으로 이뤄졌다. 포토그라피(Photography)를 새로 번역하지 않고 사진(寫眞, 베낄 사/참 진)이라는 말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시대와 전쟁, 독재의 과정을 모두 겪은 한국 근대사와 역사의 특수성이 더해져 사진이 다채롭게 발전하는 것에 큰 영향이 끼쳤고 기술적 기반과 제도 또한 근본적으로 서양과 달랐다.
사진이 탄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그에 의해 사진술이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이를 가능케 한 가장 큰 이유는 이미지를 소유하고 생산하는데 직접 참여하고자 했던 대중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줄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은 귀족층에 한정되어 있던 범위를 일반인들에게 까지 작용하게 되었고 지금은 누구나 사진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일상을 기록하고 남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번 한국 사진사를 알아보는 레포트를 통해 서양에 한정되어 있었던 사진의 역사를 한국으로 확장시키며 독단적으로 발전된 한국의 사진역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과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여러 사진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단지 풍경사진, 초상 사진 뿐 만 아니라 사진의 더 많은 용도와 역할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2. 사진술의 역사와 발전
2.1. 사진술의 기원
사진술의 기원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감광성의 특징이 조합된 것에서 비롯된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렌즈를 통해 피사체의 상을 맺는 기구이고, 감광성은 빛의 작용에 의해 영구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민감한 재료를 의미한다.
먼저, 사진은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옵스큐라는 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나 방에서 한 면의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상을 맺는 방식이다. 옵스큐라 단독으로는 발전을 이룰 수 없었지만, 여기에 빛의 특성인 직진성, 반사성, 굴절성, 회절성을 활용하면서 큰 진보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렌즈와 거울 세공의 발전도 카메라 옵스큐라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렇게 발전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회화의 선 원근법과 소실점의 원리와 유사하여 "인공적인 눈"이라 불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현대적인 반사경식 카메라가 발전했는데, 상자의 바로 윗부분에 유리를 씌우고 45도 각도로 거울을 배치하여 상을 맺는 방식이다.
이처럼 사진술의 기원은 BC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한 어두운 방의 구멍을 통한 영상의 원리, 그리고 14세기 초 다빈치의 바늘구멍 카메라 옵스큐라 등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2. 사진술의 도입과 확산
사진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다. 1839년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가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사진 과정인 '다게레오타입'을 발명하면서 사진술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사진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보편화되었다.
다게레오타입은 거울과 같이 선명한 은판 위에 사물이 정교하게 재현되는 사진 방식이었다. 이 기술은 빨리 전 유럽과 미국에 퍼져나갔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강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기존의 초상화와 달리 빠르고 정확하게 찍을 수 있었기 때문에 초상화 대신 널리 이용되었다. 또한 사진은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에, 이전까지 귀족층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가 일반 서민들에게도 확산되었다. 이처럼 사진술의 발명은 기존의 회화 중심의 예술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840년대와 1850년대에는 사진의 발달과 함께 사진 관련 산업도 급성장했다. 사진관이 등장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사진 찍기가 대중화되었다. 사진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1850년대 말에는 유리판 네거티브 방식인 콜로디온법이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다게레오타입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