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정신질환의 역사
1.1. 원시시대
원시시대 사람들은 정신질환이나 치료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나 두개골 등을 보며 그 당시의 정신질환에 대한 사상이나 치료법을 추측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물환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모든 자연현상과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대인들은 정신질환이 다른 신체질병에서와 같이 외부로부터 온 악령 등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신질환자들을 악령이나 귀신들린 사람 혹은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치료는 초월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 몸속의 귀신을 내쫓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두개골에 구멍 뚫기, 불태우기,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 살풀이, 굿, 주문 등을 하였는데 이는 주술사나 마술사 등에 의해 시행되었다. 그 당시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생물학적, 심리적 작용을 거의 알지 못하고 단순한 인과관계만으로 질환을 평가하였다. 정신질환은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비인간적인 치료만이 수행되었다.
1.2.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과학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접근이 대두되었다. 이 시기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등장하였다.
플라톤은 건강이란 정신과 육체의 조화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여 정신 건강 개념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영혼이 뇌에 존재한다고 믿었고, 히스테리와 우울증에 대하여 명명하였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감정은 심장에 있으며 심장이 중심기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이며 가장 완벽한 동물이라고 주장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정신질환을 자세히 서술한 학자이다. 그는 정신병에 대한 신의 영향을 부정하고, 체액설에 근거하여 뇌에서 열, 냉, 건, 습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정신질환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뇌가 보유하고 있는 액체가 졸도, 간질, 섬당 등을 일으킨다고 하였고, 인간의 기질을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의 4가지로 구분하였다.
헤로필루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는 인간의 뇌를 절개해보았으며, 그 결과 영혼과 감각, 그리고 뇌와 신경계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정신질환이 뇌의 결함으로 기인한다고 보았으며, 이후 정신질환이 신경학의 영역이 되었다.
애스클레피아데스는 정신장애가 감정의 장애로 인해 생긴다고 믿었고, 정신질환을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하고 착각과 망상을 구분하였다. 그의 학설은 식이, 목욕, 마찰 등의 위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환경과 사회활동, 음악 등이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서술하였다.
갈레노스는 그리스 전성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가, 철학가, 과학자였으며 그리스의 체액설을 로마에 보급시킨 사람이다. 그는 신경계 해부생리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였고, 지능과 감정, 기억의 중심부가 뇌라고 하며 뇌의 구조를 성명하고 전체 인간을 강조하였다. 그는 정신과 신체 환경이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하였고 질병상황에서 신체 장기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과학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접근이 나타났으며,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학설들이 제기되었다.
1.3. 중세시대
중세시대에는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서양의학이 후퇴하고 초기 과학적 지식체가 사라지며 정신질환에 대한 마법과 종교적 설명이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 정신질환은 신의 저주, 악마로 인한 고통이라고 생각했으며, 정신질환의 치료는 의학에서 제외되었다.
중세기부터 르네상스까지는 마법이 성행하였고 후반기에는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다. 수도사들은 정신질환자들을 마귀가 씌였다며 처형했으며, 정신질환자를 마녀라고 생각하여 수천 명의 정신질환자가 화형을 당했다. 정신질환자들이 핍박받은 또 다른 이유는, 이 시기에 성병이 유럽에 매우 유행했기 때문이다. 성병 특히 매독의 마지막 단계는 뇌의 기능 장애로 인한 정신의 파괴인데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기전을 알지 못해 정신질환자와 뇌 매독환자를 같은 부류로 분류했다. 뇌 매독이 널리 유행하며 정신 질환자는 문란한 사람이라는 낙인과 함께 정신질환은 전염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확산되었다.
비록 이 시기가 정신 의학의 암흑기이긴 하지만 두 지역에서 주목 할 만 한 변화가 있었다. 12세기경 belgium의 gheel마을에서는 가족위탁간호가 시작되어 자기 집에서 정신질환자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속성은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정서적 상태에 문제가 있을 때는 인간의 사랑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치료방법의 차이로 나타났는데, 동양에서는 종교적 요인을 배제한 여러 요인으로서 질병을 설명하였으며,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여 명상과 자기훈련, 요가 등을 권장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Hippokrates가 이루어 놓은 의학과 정신의학이 중동지방으로 옮겨갔는데, 중동지방에서는 705년 Baghdad에 역사상 처음으로 정신장애자 치료를 위한 병원 건립되었다. 독일의 의사 Paracelsus는 저서에서 인간은 육체라는 자연적 존재와 영혼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의 혼합체라고 하였으며 정신병은 자연의 원인으로 생기는 병이라고 하였다. 그는 새로운 의학의 여명기를 여는데 공헌하였고 훗날 최면술로 발전하는 신체자력을 주장하였다.
중세기는 정신질환을 귀신의 문제나 마법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종교적이고 가학적인 치료가 대부분인 정신의학의 암흑기였다.
1.4. 르네상스시기
15세기에 이르러 점차 과학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고와 인간에 대한 존중이 의사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정신질환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등장하였다"
John Wayer는 귀신학을 반박하여 최초로 귀신학에서 심리학을 분리하였다. 그는 수도사의 마녀사냥을 비판하며 정신이상자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므로 의시가 이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치료를 위한 치료적 관계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세밀한 관찰을 강조하였고 환자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첫 번째 임상 정신과 의사였다. 또한 그는 근대정신 의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Zacchias는 최초의 임상 정신과 의사이며 법의학의 선구자이다. 그는 법보다는 인간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정신질환자의 범법행위는 의사가 판단해서 처벌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에서는 런던 교외에 성 마리아 구빈원이 설립되어 정신질환자와 일반 부랑자들을 수용하였으나, 이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나 치료는 없었다. 병세가 경한 환자들은 길거리로 나가 구걸하도록 하거나 난폭한 환자들은 런던의 상류 사람들에게 소액을 받고 구경시키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정신질환을 귀신과 마법으로 설명하며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엑소시즘을 사용한 종교적인 치료와 귀신,마법에 대한 벌이 주된 치료였다.
1.5. 17~18세기 초반
17~18세기 초반에는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신질환자들을 수용소에 가두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1601년 엘리자베스의 빈민법이 제정되면서 지역사회에 정신병 환자를 돌봐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고, 정부가 간호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정신질환자의 감금과 시설화를 지지하는 사회 정책의 일환으로 여러 곳에서 요양원이 설립되었다. 요양소의 설립으로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었고, 가벼운 정신질환자들은 시설에 수용되었으며 난폭한 환자들은 집에서 감금되거나 감옥에 구속되어 신체적 억제를 가했다. 수용소에서는 극빈자, 죄수, 정신질환자들을 같이 취급하였으며, 정신질환자들의 관리는 의학과 분리되어 그들을 동물로 보아 학대가 심했다. 일부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을 여전히 구경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 시기 프랑스의 Philippe Pinel은 정신치료의 개척자로 도덕적 치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변화시켰고, 환자들을 마녀나 악마로 보지 않고 아픈 사람으로 보며 돌봄을 제공하였다. 다른 의사들도 정신질환자들이 귀신 들린 것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Mesmer의 동물자기설과 Gall의 골상학 등 새로운 이론이 제시되었고, William Tuke는 요크요양원을 설립하여 정신질환자들이 일상생활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17~18세기 초반에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