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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적 식생활과 소비문화의 변화
1.1. 서론
근대화와 함께 우리는 온갖 인공물들을 이용해서 살아가게 되었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숱한 인공물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인공화 된 일상을 살다보니 우리는 자연을 그저 단순한 자원이나 안식처로 여기기 쉽게 되었다. 근대 일상이란 인공화 된 일상이며 자연의 중요성을 망각한 일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상의 인공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우리는 자연 속의 존재이며 자연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이 영위되는 방식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위의 기술과 같이, 식생활에서 근대화가 가져다 준 변화는 인공화 된 지점을 자연스레 사용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 자체는 쌀, 채소, 육류, 생선 등 전근대사회인 조선과 비슷한 범주에 있을지 몰라도 그 재료 자체를 전근대사회에서는 자가생산에 의해 이루어진 반면, 현대에는 자가생산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유통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생산된 재료 외에도 공장을 통해 가공된 재료의 이용도 많아졌다. 따라서, 식생활의 주가 되는 재료는 생산과 유통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1장에서는 일제강점기 식품 관련법 정비의 부분을 서술하고자 한다. 식품 관련법 중 가장 먼저 도입된 육류 생산과 소비를 위한 식품 위생법의 정비를 서술하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일제강점기 법의 정비로 인하여 자가 생산에서 면허제 공장 생산으로 생산 방식이 바뀌게 되며, 전체 세금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주류와 관련된 부분을 살피고자 한다.
1.2. 일제강점기 식품 관련법 정비와 사회변화
1.2.1. 식품위생법 정비와 육류 소비 관행
일제강점기 식품위생법 정비와 육류 소비 관행은 다음과 같다.
선진국에서는 19세기 이후 근대산업의 발전과 함께 가공 식재료나 식품첨가물, 포장기술이 발달하게 되자 식품으로 인한 위생상 위해방지와 국민건강 향상 및 증진을 목적으로 한 식품위생법의 법제화가 추진되었다. 일본의 경우, 영국·미국·독일의 선진 위생제도를 바탕으로 식품위생 관련 규정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한일병합을 전후로 한반도에 이식되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식품위생법'이 발포된 1962년까지 우리나라 위생행정의 기본 틀은 일제강점기에 제정된 식품 관련 제재규칙들이었다.
한일병합 이후에는 식품위생 관련제도가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강화된다. 한일병합 이후 식품위생 관련 제도의 시행은 병합 이전 경성이사청 관내에서 일본인에게 한정하여 시행되던 법규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관내의 일본인에게만 적용되던 규정을 1909년 도수규칙에 통합하여 일본인·조선인에게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도수규칙을 제정하였다. 둘째는 가공식품의 발달, 음식물 소비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필요해진 제도로 병합 전 통감부시대에 도입된 제도보다 대상이 넓어졌다.
이 중 육류의 유통 및 판매와 관련된 도수규칙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도입된 식품위생관련 제도라는 점과 산업화나 상업화로 인해 파생된 기타 식품위생제도와 달리 이미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육류 관련 상행위 및 식생활관습에 영향을 주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육류 유통에 관련된 제도는 이전부터 푸줏간 영업을 하던 포사주인들을 대상으로 신규 제도에 의한 허가를 받은 뒤 신규 규정에 따른 포사세를 납부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사규칙은 위생설비 요건에 대한 명문 규정을 갖추지 않고 있었고, 세금 부과기준도 모호해 불합리한 측면이 존재하고 있었다.
반면 근대적 성격의 도수규칙은 법규의 제재대상이 되는 육종을 소 이외에 양, 돼지, 말, 개까지 확대하여 실제 국민건강에 크게 영향을 끼칠 가축류의 도살, 유통과정을 관리하려 하였다. 도장의 허가에 있어 환기, 소독 시설 등 구체적인 위생기준을 마련하였고, 도살 개체 두수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합리화되었다.
이처럼 도수규칙은 위생이라는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근대적 법문항을 갖추어 보다 강력한 국가적 통제를 하려 한 데 비해 구한말 포사규칙은 전근대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1911년 시행된 '수육판매규칙'은 판매유통에 관여하는 상인에게 적용되며, 기존 방식으로 판매업을 하던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행동양식을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소비자 구매행동의 양분화를 유발하기도 하였다.
1.2.2. 주류 법 정비와 주조업의 변화
조선시대에는 각 농가가 자가용으로 주류를 생산하거나 주막과 같은 소규모 술집에서의 생산·판매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주류 생산에 종사하는 주조업자는 지역사회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식민지 시기 주세령 체제 하에서 자가용 주조가 금지되면서 주조업자의 합동집약이 진전되었다.
조선주는 약주·탁주·소주로 나뉘는데, 누룩이 조선주의 독특한 풍미를 가져왔다. 누룩은 농가의 부업으로 제조되어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이처럼 술의 생산과 유통이 가정 또는 마을 수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산과 판매의 분업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09년 주세법 제정을 계기로 이러한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세법 시기에는 제조 석수를 스스로 신고하면 자가용 주조를 무제한으로 허용하였다. 하지만 주세령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조업자가 지나치게 많고 장부 기장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주조장의 통폐합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주세법과 주세령은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소규모 자가용 주조를 금지하고 대신 주조장의 합동집약을 통해 사실상 주류 생산을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주세법에서는 제조 석수 신고제를 도입하여 자가용 주조를 무제한 허용했지만, 주세령 시기에는 한 주조장의 최저 제조 석수를 설정하여 영세 경영을 도태시키고자 했다. 또한 조합제도를 도입하여 주조업자들을 통합 관리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탁주 제조장 수가 1916년 9만여 곳에서 1930년 4천여 곳으로 크게 감소했다. 자가용 주조 면허도 1916년 29만여 명에서 1930년 거의 사라졌다. 그 결과 1928년에는 주세가 국세 총액의 28.8%를 차지할 정도로 주류 생산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주류 관련 법령 정비는 전통적인 자가용 주조를 금지하고 주조업자의 통폐합을 유도함으로써 주류 생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크게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3. 새로운 식재료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3.1. 설탕의 도입과 식생활의 변화
19세기 이전까지 설탕 소비문화는 생산지나 생산지와 교역이 빈번한 곳에서 발달했다. 그 이외 지역에서는 설탕이 희소한 제품으로 최상류층만이 사용하는 귀한 약재, 장식재였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세계적으로 설탕의 쓰임새가 바뀌었다. 근대적 설탕 소비는 전근대와 달리 세계적으로 설탕이 음식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다. 설탕 가공식품이 세계화되고, 설탕이 각국 음식과 융합하여 토착화되었다. 설탕 소비가 확대되면서 세계인의 음식 기호, 취향, 입맛이 변하고 식사구조가 변화했다.
을사조약이후 국권상실 위기 속에서 일본의 탈아입구론 영향을 받은 한국 문명 개화론자들은 일본을 통해 설탕 문명화 담론과 영양담론을 수용했다. 이들은 서구제국이 강대국이 된 것은 국민들이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이 건강하려면 위생적이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해야하는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