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이나 단체가 지역사회나 공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철학적 배경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자원봉사의 철학적 배경을 살펴보고, 각 배경에 대한 예시를 설명하며, 나의 자원봉사활동 경험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원봉사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향후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2. 강릉모아미래도
2.1. 신사임당의 생애
신사임당(申師任堂)은 1504년(연산군 10년) 강원도 강릉에서 진사 신명화의 무남 5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한성(서울)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떨어져 강릉 외가에서 살면서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어머니 이씨는 결혼 후 줄곧 친정에서 살았고 현명하고 냉철한 어머니를 통해 외조부의 학식이 사임당의 예술과 학문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신사임당은 붓글씨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드러내 아버지가 각별히 아꼈다. 16세에 스스로 자기 호를 '사임당'이라 지었는데, 이는 중국 고대 문왕의 어머니 '태임'이 가장 현숙한 여인이기 때문에 그녀를 본받는다는 뜻이다. 신사임당은 19세에 이원수와 결혼하였는데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바로 한성으로 가지 않고 강릉에서 살았다. 결혼한 지 몇 달도 안 되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21세에 파주에 있는 시댁으로 가게 된다. 33세 때, 셋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고향 강릉으로 내려가 아들 이이를 낳는다. 37세 한성으로 돌아가 그림과 글씨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힘을 썼다. 1551년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한 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사임당은 시문과 그림, 글씨 등 조선 시대 대표적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개척하였고, 여성이면서도 성리학적 지식이 해박하였다. 작품으로는 자리도, 산수도, 초충도, 노안도, 연로도, 요안조갑도와 6폭 초서병풍 등이 있다.
2.2. 나에게 끼친 영향
결혼과 함께 가족을 중심으로 살다 보니 자식들이 커가면서 아내와 어머니로의 삶 밖에 없어 공허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신사임당은 당시 유교사회의 제약을 받았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자기 계발에 매진하였다. 나도 현실의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서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배우기를 힘쓰며 성장해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동안 자녀 양육으로 분주함에서 조금은 벗어난 지금, 이제 50대 들어서 새로운 꿈을 향해 학업에 도전했다. 남편도 어학에서 손을 떼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도 익숙하지 않은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학생신분으로 대학공부가 쉽지 않음을 경험하며 대학에 다니는 딸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같은 학업의 길을 가고 있다. 자녀와 함께 미래를 개척하며 성장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2.3. 현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사임당은 당시의 유교적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였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힘써 훌륭한 자녀들을 길러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여성 역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사임당은 자녀들을 강압적으로 키우지 않고 개성을 존중하며, 그들의 재능을 발견하여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펼치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는 현대 부모들이 자녀의 행복을 위해 배워야 할 교훈이다. 자녀의 행복은 그들의 강제적인 성공이 아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더불어 사임당은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학문적 자기계발에도 힘썼다는 점에서 현대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정과 사회생활의 양립은 결코 쉽지 않지만, 사임당의 삶은 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임당의 삶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균형 잡힌 삶을 살아냈다. 이는 현대 여성들이 지향해야 할 모범이 되며,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자기 계발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함을 시사한다.
3. 정조, 그가 꿈꾸던 세상
3.1. 성군이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며 세워진 조선
조선을 건국한 이는 이성계이지만, 조선을 설계하고 꿈꾼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다. 삼봉은 이성계를 통해 실현할 새로운 나라, 그가 꿈꾸던 나라는 권력에만 눈이 먼 잔챙이 같은 왕이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라 성군이 통치하는 나라였다. 비록 삼봉은 죽었지만, 그의 꿈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에 의해 활짝 꽃피웠고, 그 꿈은 영조를 거쳐 정조에 이르러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정조는 탕평책을 계승하였고, 그의 학문적 탁월함과 실력은 규장각에서 잘 드러났다. 그는 규장각을 정권의 핵심기구로 삼아 실학파와 북학파 등 제학파의 장점을 두루 수용하며 문화정치를 실현해 갔다. 정치적으로는 당파적 분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통합을 이룩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당시 신분제를 혁파하는 '서얼통청운동'이라는 신분상승운동을 전개했다.
정조는 왕으로서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이자 스승인 군사(君師)임을 자부했다. 그는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서적 간행에 심혈을 기울여 새로운 활자를 개발하면서 조선 후기의 문예부흥기라고 일컫는 황금시대를 활짝 열어놓았다. 또한 강력한 왕권으로 왕도정치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문물제도들의 정비사업을 완결했다. 정조는 조선의 전형적인 학자 군주로 유일하게 문집인 '홍재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