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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민왕의 생애와 개혁정치
1.1. 공민왕의 생애
공민왕은 고려의 제31대 군주로, 사실상 마지막으로 고려의 정권을 장악했던 왕이다. 당시는 몽골의 원나라 간섭기였는데, 공민왕은 자주적인 정책을 펴면서 여러 개혁 정치를 통해 고려를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몽골 이름은 바이앤티무르였다. 고려 여성인 덕비 홍씨가 공민왕의 어머니였다. 공민왕은 12살 때 원의 연경에 볼모로 보내졌고, 이후 약 10년간 연경에서 살다가 1351년 12월에 귀국했다. 공민왕에게 연경의 삶은 외롭고 힘든 볼모생활이었다. 원은 고려의 왕을 마음대로 즉위, 폐위시키면서 고려 왕권의 존엄함을 짓밟았다. 공민왕은 두 차례의 왕위계승에서 실패하는 아픔을 겪다가, 21세 때 원 위왕의 딸 보타시리 즉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왕위계승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반원주의자인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지만, 이들은 감성적 코드가 잘 맞았다. 공민왕은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표적인 화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공민왕은 그림과 음악에 조애가 깊었고, 고려의 다른 왕들과 기질이 달랐다.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원의 내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원나라의 멸망이 멀지 않았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과감히 변발을 풀어헤치고 원나라 옷을 벗고 고려 복색을 갖추는 등 우리의 풍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민왕의 정치가로서의 운명은 불우했다. 원나라와의 갈등, 친원세력들의 횡포, 반란과 잦은 전쟁 등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사랑하는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을 폐인으로 만들었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의 죽음과 정치적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점점 무너져갔으며, 결국 자제위에 의해 살해당했다. 공민왕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후일 무속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졌고, 홍건적의 침입 때 피난 가는 역사적 사실은 한강변 주민의 신앙 대상으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1.2. 공민왕의 개혁정치
1.2.1. 반원 정책
공민왕은 몽골의 원나라 간섭기에도 고려의 자주적인 정책을 펼쳤다. 우선 몽골의 연호와 관제를 폐지하고 문종 당시의 칭제로 환원하였으며, 원나라의 정동행중서성도 폐지하였다. 그리고 몽골이 백 년 가까이 장악하고 있던 쌍성총관부 관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