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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서양고전의 이해
1.1. 맹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맹자(孟子)의 이름은 가(軻)이며, 자(字)는 자여(子輿)혹은 자거(子車)라고 전해지기도 하나 위진(魏晉)시대 이후의 설로서 확실하지 않다. 그는 전국시대 중기 추(鄒)나라(지금 산동성 추현鄒縣) 사람이다. 맹자의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가설들이 존재하나, 기원전 372년에서 기원전 289년경, 혹은 기원전 385년에서 기원전 295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맹자는 "공자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이다"라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기원전 4세기 중반에 활동하였던 사람이 확실하다. 맹자의 선조는 노나라의 삼환(三桓)씨 중의 한 집안인 맹손(孟孫)씨로 알려져 있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네 아들 중 첫째는 장공(莊公)이 되지만 둘째 셋째 넷째는 각각 중손(仲孫)씨 숙손(叔孫)씨 계손(季孫)씨로 독립된 대부(大夫) 집안으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이 노나라의 삼환(三桓)씨이며, 후에 중손(仲孫)씨가 맹손(孟孫)씨로 씨명(氏名)을 바꾸었다. 이 삼환씨가 노나라를 전횡했으나, 전국 중기 이후 계손(季孫)씨 외에 숙손(叔孫)씨 맹손(孟孫)씨는 이미 쇠퇴하여 미미해졌다. 이것으로 본다면, 맹자(孟子)는 몰락한 노(魯)나라의 왕족 후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맹자 책에는 맹자의 일생에 대해서 별달리 언급한 것이 없고, 사마천의 사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젊은 시절 삶에 대해서 몇 가지 야사에 가까운 일화가 전해진다. 맹자(孟子)는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장(?)씨의 길쌈으로 생활할 정도로 곤궁했다.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일화가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실려 있다. 청나라 말의 학자인 임춘부(林春溥)가 작성한 맹자 시사 연표(孟子時事年表)에 따르면, 맹자가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내내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이러한 일화들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맹자라는 사람의 성격을 보여준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교육은 엄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맹자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여러 일화에서 나타난 성격과 지향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맹자에게는 가문의 자존심과 대장부(大丈夫) 의식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으며 기질 상 자기의 절개를 굽히지 못 했다. 그는 대의를 이루는데 타협이 없는 성격이었다. 당시 제후들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계책을 요구했지만, 맹자는 인의(仁義)에 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하여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맹자의 고향인 추(鄒)지방은 노(魯)나라와 문화적으로 한 지역을 이루고 있었고, 이 지역은 이미 유가 활동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맹자는 약 40세 전후에 시경과 서경에 통달하였고, 예악(禮樂)의 연습에 힘쓰면서, 공자의 학설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맹자는 추로(鄒魯) 지방에서 주요한 사상을 형성했고, 학문의 지도자로서 유가 학파를 이끌었다. 맹자 당시에는 유가 학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거기에서 맹자가 시경과 서경을 주요한 교재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