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본회퍼의 행위와 존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1.1. 문제제기
1.2. 연구의 배경과 목적
1.3. 연구 방법과 범위
2. 본회퍼의 생애
2.1. 초기 생애와 신학 수학
2.2. 나치즘에 대한 저항과 투쟁
2.3. 투옥과 순교
3. 본회퍼의 주요 저서와 신학
3.1. 『성도의 교제』: 교회 사회학적 접근
3.2. 『행위와 존재』: 하나님의 존재 이해
3.3. 『창조와 타락』: 성서해석과 인간이해
3.4. 『나를 따르라』: 제자도와 제자의 삶
3.5. 『신도들의 공동생활』: 공동체 이해
3.6. 『윤리학』: 그리스도 중심의 윤리
4. 본회퍼 신학의 주요 주제
4.1. 그리스도와 교회
4.2. 세속성과 그리스도교
4.3. 고난과 순교정신
5. 본회퍼 신학의 영향과 과제
5.1. 현대 신학에 끼친 영향
5.2. 한국교회에 대한 시사점
5.3.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
6. 결론
7.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1. 문제제기
다음은 본회퍼의 행위와 존재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한국교회가 물량화와 세속화, 성직의 세습화로 신앙의 생명력을 상실하였고, 기독교인들의 기복신앙으로 참다운 신앙의 영성이 고갈되었다. 한국교회의 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독교 신앙의 생명력과 영성 회복이 시급한 문제이다.
1.2. 연구의 배경과 목적
본회퍼의 신학은 처음부터 신앙의 진리가 세계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진리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본회퍼는 1924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방문하면서 로마 교회의 우주성과 예배의식은 독일 개신교회의 지역적, 민족적 편협성을 보게 하였고, 교회를 새롭게 신앙하게 하였으며, 교회의 우주성에 눈을 떴다. 이는 본회퍼가 신학과 삶의 일치하는 실천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된 배경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물량화와 세속화, 성직의 세습화로 신앙의 생명력을 상실하고, 기독교인들의 기복신앙으로 참다운 신앙의 영성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생명력과 영성 회복이 시급한 문제이다. 따라서 본회퍼의 통전적인 영성을 고찰하여 한국교회가 본회퍼가 보여주었던 신앙의 균형과 건강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1.3. 연구 방법과 범위
본 연구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적 사상과 그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공된 문서들을 바탕으로 본회퍼의 생애와 주요 저작들을 분석하고 그의 신학적 주제들을 살펴본다. 특히 본회퍼의 신학이 현대 신학에 끼친 영향과 한국교회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기존 문헌 연구 외에도 최신 연구 동향과 데이터를 추가로 조사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을 구성한다. 전체적인 논지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하되, 전문용어의 정확한 사용과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회퍼의 신학이 지닌 통찰과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향후 과제와 전망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2. 본회퍼의 생애
2.1. 초기 생애와 신학 수학
본회퍼는 1906년 2월 4일 독일의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칼 본회퍼와 파울라 본회퍼 사이에서 태어난 팔남매 중 여섯째이다. 1912년 본회퍼의 부친 칼 본회퍼는 베를린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로 초빙되었다. 1923년 본회퍼는 튀빙겐과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924년 이후에는 베를린에서 신학 수업을 이어갔다. 1927년 그는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1930년 출간)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에서 나타난 논의의 핵심은 하나님과 이 세계, 그리고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파악함에 있어 나타나는, '전체성이라는 관념론적 목표'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의 서술은 근본적인 타자성과 은총의 선재에 기초하고 있다. 이후 1929년 본회퍼는 『행위와 존재』를 발표하며 계시의 사건으로서의 하나님의 특성과 성육신의 모습으로서의 하나님의 특성 간의 긴장을 해결하기 위한 관점을 제시했다.
1930년 본회퍼는 「행위와 존재」(Akt und Sein)로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이어서 1930년 9월 미국 유니온 신학교 연구과정에 참여했다. 1931년 7월에는 칼 바르트와 함께 본에서 2주간 체류하며 교류하기도 했다.
이처럼 본회퍼의 초기 생애와 신학 수학은 그의 신학 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특히 「성도의 교제」와 『행위와 존재』를 통해 드러난 그의 신학적 관심사와 방향성은 이후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과 주요 신학 주제로 이어져 나갔다고 볼 수 있다.
2.2. 나치즘에 대한 저항과 투쟁
본회퍼는 히틀러의 정권 장악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나치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1933년 8월, 본회퍼는 독일 기독교인들이 나치에 동조하는 상황 속에서 베텔 신앙고백을 작성하여 저항을 표명하였다. 이는 나치와 타협하던 기존 교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진정한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본회퍼는 1936년 2월 베를린 대학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한 뒤, 교수자격을 박탈당하였다. 이후 1936년 8월에는 문교부장관의 조치로 대학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이는 나치 정권이 본회퍼를 에잇게 여겨 그의 활동을 제한한 것이었다.
1937년 7월 1일, 본회퍼는 니묄러 목사관에서 체포되었다. 그가 체포된 배경에는 나치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본회퍼의 저항 활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1937년 11월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출간하였고, 1938년 1월에는 베를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이는 나치 정권이 본회퍼의 신학 및 활동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39년 본회퍼는 영국에서 벨 주교, 라인홀드 니버, 허드슨, 비서트 후프트 등을 만났다. 이는 그가 나치즘에 맞서 국제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1942년 5월 스웨덴에서 벨 주교를 만나 쿠데타 계획을 알리는 등 그의 저항 활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마침내 1943년 4월, 한스 폰 도나니 부부와 요제프 뮐러 부부와 함께 체포된 본회퍼는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죽음은 나치즘에 대한 투쟁 중에 순교한 것이었다.
이처럼 본회퍼는 히틀러 정권 출범 직후부터 나치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지켜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교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정치적 투쟁에도 참여하였고,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본회퍼의 ...
참고 자료
데이비드 F.포드 저, 류장열 역 ,현대 신학과 신학자들, CLC(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김균진 저 ,현대 신학사상 (20세기 현대 신학자들의 삶과 사상), 새물결 플러스, 2014
존 프레임 저, 조계광 역,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 생명의 말씀사, 2018
위르겐 몰트만 저, 김균진 외 1명 역,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회윤리,서울신학대학교출판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