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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개요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에서 종말론을 '마지막 것'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이해한다.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재림)는 오직 기대와 희망의 범주 안에서만 이해된다. 몰트만은 신앙과 희망의 관계에 대해 "신앙은 희망을 세우는 기초이고, 희망은 신앙을 키우고 지원한다."라고 설명한다. 신앙이 없다면 희망은 유토피아적이 되고, 희망이 없다면 신앙은 약해지며 결국 죽게 된다. 몰트만은 현대 실존주의의 절망에 반대하며, 기독교의 소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것이라고 본다. 현재는 미래의 지평에 의해 변화되며, 믿는 자는 오늘을 넘어 미래의 약속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하나님은 약속과 변혁 안에서 함께 계시는 분이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소망은 교회를 인간 사회 안의 항구적 동요 속으로 변혁시키며 실재의 창조적 변혁을 추구한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은 앞으로 올 것들의 약속이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기에 기독교와 문화적 환경 간의 어떤 종합도 불가능하다. 종말론을 제거하면 결국 신앙을 포기하게 된다.
1.2. 종말론에 대한 기존 신학자들의 관점
몰트만은 종말론을 '마지막 것'에 관한 교리로 정의하지 않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이해한다. 그는 종말론이 단순히 예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미래를 말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신학자들은 종말론을 다르게 해석한다. 칼 바르트는 종말을 "이 역사의 모든 순간 속에 있는 영원한 현재"로 이해하며, 역사와 미래의 지평을 상실시킨다. 역시 루돌프 불트만은 종말론을 신앙의 실존과 불신앙의 실존의 문제로 보며, 개인의 결단의 순간 속에 둠으로써 역사와 무관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오스카 쿨만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미 결정된 승리의 과정으로 종말론을 해석한다. 이는 종말론의 역사 변혁적 의미를 약화시킨다. 월터 판넨베르크 또한 역사 전체과정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면서 현실을 정당화하여 종말론의 변혁적 성격을 상실한다.
이처럼 기존 신학자들은 종말론을 주로 역사 밖의 사건이나 개인의 실존적 문제로 보거나, 역사의 변혁과 거리가 먼 것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몰트만은 종말론을 역사와 긴밀히 연관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파악하여 현실 변혁의 토대로 삼고자 한다.
1.3. 몰트만의 역사적 종말론
몰트만은 종말론을 '마지막 것'에 관한 교리로 정의하지 않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종말론은 단순히 예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재림)는 오직 기대의 범주 안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몰트만은 현대 실존주의의 절망에 반대하며, 기독교의 소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믿는 자는 오늘을 넘어 미래의 약속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하나님은 신자가 소망과 변혁 안에서 약속을 기다리는 곳에 현존하신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소망은 교회를 인간사회 안의 항구적 동요 속으로 변혁시키며, 실재의 창조적 변혁을 추구한다.
종말론의 실재적 언어는 앞으로 올 것들의 약속이기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된다. 종말을 기독교의 핵심에서 제거하면 신앙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몰트만은 인간과 하나님의 계시의 상호관계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시며, 하나님 외에 누구도 하나님을 계시하지 못한다. 계시는 인간이 구원이나 진정성을 얻는 데 필수적이다.
몰트만은 "비록 구원사의 개념이 철학적으로는 시대착오이며 신학적으로는 이신론적이라고 할지라도 기독교의 계시가 역사에 연루된 세상을 위하여 품고 있는 종말론적 미래조망에 관한 문제를 보존한다"고 말한다. 그는 판넨베르크의 "전체로서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라는 결론을 배격하는데, 이는 하나님과 역사 간의 직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현대 역사적 방법론이 역사와 하나님 간의 연속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간접적인 연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부활의 종말론, 십자가에 처형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