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구약성경 개괄
1.1.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1.1.1. 이사야서
1.1.1.1. 이사야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는 남쪽 유다가 앗수르의 위협을 받던 시기에 사역을 하는데,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4대에 걸쳐 장기 사역을 합니다.""
이사야는 B.C. 739년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소명을 받고, 므낫세 왕이 통치할 때까지 선지자 사역을 계속합니다. 이사야는 B.C. 701년에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 주민들을 포로로 잡아가려고 남쪽 유다를 공격하는 중요한 시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유다 사이의 중재자로 활동한 결과, 산헤립의 모든 군대가 하루아침에 전멸합니다.""
한편 이사야는 B.C. 697년에 므낫세의 박해로 인해 순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사야 후반부(사40-66장)에 기록한 형태로 그의 메시지를 보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1.1.1.2. 이사야서의 구조와 내용
이사야서의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사야서는 크게 전반부(1-39장)와 후반부(40-66장)로 나뉜다. 전반부는 이사야가 살았던 8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반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대한 예언이다. 후반부는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의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전반부(1-39장)의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12장은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설교집으로, 여기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메시아 왕국의 비전이 제시된다. 13-23장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들로, 바벨론, 블레셋, 모압, 다메섹, 에티오피아, 애굽 등 당시 이스라엘과 관련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나온다. 24-27장은 보편적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다룬다. 28-33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함께 회복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34-35장은 세상 나라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함께 거룩한 길에 대한 축복이 다루어진다. 마지막으로 36-39장에서는 히스기야 왕 시대의 사건들, 곧 앗수르의 예루살렘 공격과 이에 대한 대응, 히스기야의 병고침과 바벨론과의 외교적 교류 등이 기록되어 있다.
후반부(40-66장)의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40-48장은 바벨론 포로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평화의 메시지다. 여기에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이 담겨 있다. 49-57장은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에 관한 내용으로, 이 종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58-66장에서는 참된 예배와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관한 메시지가 제시된다.
종합하면,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메시아 왕국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실현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1.2. 예레미야서
1.1.2.1. 예레미야의 생애와 시대
앗수르 왕국이 붕괴된 B.C. 612년 이후, 바벨론이 세계를 장악합니다. 예루살렘 궁정은 애굽 추종세력과 바벨론 추종세력으로 분열해 권력 다툼에 몰두하는데, 선지자들은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애굽이나 바벨론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B.C. 609년에 바로 느고는 위기에 처한 앗수르를 도우려 올라가고, 요시야 왕은 그를 막으려하다가 므깃도에서 죽습니다. 따라서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는데, 3개월 후 바로 느고는 그를 애굽으로 데려가고 요시야의 첫째 아들 여호야김(B.C. 609-597년)을 왕좌에 앉힙니다. 여호야김은 악한 사람으로 예레미야를 침묵케 하려고 시도합니다.
한편 B.C. 605년에 일어난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의 왕세자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격파하고, 그 후 바벨론의 왕이 됩니다.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굴복시키고 첫 예루살렘 공격을 감행하면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그 후 여호야김은 왕궁 쿠데타로 인해(추정) 통치 11년 만에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는데, 그는 B.C. 597년에 바벨론이 두 번째 예루살렘 공격을 감행하면서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대신해 요시야의 셋째 아들 시드기야를 왕좌에 앉히고, 시드기야는 11년 동안 느부갓네살의 봉신(封臣)으로 왕 노릇을 합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보호하며 그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지만 그 말씀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귀족들에게 굴복하여 느부갓네살을 배반합니다. 이후 시드기야 통치 9년에 느부갓네살은 마지막 공격을 감행하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B.C. 586년에 유다를 멸망시킵니다. 예레미야 40-45장은 예루살렘 멸망 후 유다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 총독 그달리야의 통치 아래 예레미야와 수많은 평민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그대로 남겨둡니다. 민중 봉기 후 애굽의 추종세력에 속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애굽으로 도주하는데, 이때 예레미야를 억지로 끌어가고, 끌려간 예레미야는 그 후 애굽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예레미야는 가장 불행한 시기에 선지자의 소명을 받은 제사장입니다. 그는 40년 이상의 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마침내 바벨론은 남쪽 유다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도 남쪽 유다는 예레미야를 쓸데없는 간섭자 또는 매국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