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약물의 발견과 발전
1.1. 고대 의약품의 궤적
1.1.1.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의약품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의약품 발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온갖 종류의 '쓰레기 약'들이 존재했는데, 질병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악취를 풍기는 동물의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등 더러운 물질을 사용했다. 또한 돼지의 귀지와 같은 약물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쓰레기 약'들은 외과수술에도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BC4,000년경부터 BC1,000년까지 1,000년 간 550종이나 되는 의약품 목록을 점토판에 남겼다. 그들 역시 질병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몸속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악취를 풍기는 동물의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등을 사용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쓰레기 약'은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질병은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 자연현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백합이나 양귀비 등과 같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자연물질을 이용하게 되었다.
1.1.2. 중국의 신농씨와 의학체계 발전
중국의 신농씨와 의학체계 발전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전설의 중국 제2대 황제인 신농씨神農氏는 중국 의학과 농업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신농씨는 너무 많은 독초를 맛본 탓에 몸속에 엄청난 양의 독소가 쌓여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공적은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만물이 木, 火, 土, 金, 水 다섯 가지 기본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오행설이 등장했다. 의학도 이 이론에 맞추어 체계를 갖추어 나갔으며, 후한~삼국시대 무렵에는 신농씨의 이름을 빌린 "본초강목本草綱目"이 완성되었다. "본초강목"에서는 365종의 약물을 상품은 독성이 없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양명약養命藥", 중품은 약은 되지만 자칫 독도 될 수 있는 "양명약", 하품은 독성이 강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는 "치료제"로 나누어 정리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불로불사약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서유기 등에 나오는 '금단'이라는 약이 그것이다. 옛 사람들은 불로불사약은 광물을 이용해 만들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동식물이 생로병사의 흐름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반면 광물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사용한 광물에는 유황, 비소 화합물, 단사, 수은 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물질들은 피와 유사한 선명한 붉은색을 띠어 영혼에 생기가 돌고 힘이 깃들어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상 이러한 광물질은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 불로불사는커녕 다량으로 사용하면 오히려 즉사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었다.
당 왕조의 11대 황제 헌종이나 16대 황제 선종도 금단 중독으로 정신착란이나 급사를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불로불사약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과 희생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의학이 아직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의학은 오행설, 신농씨, 본초강목 등을 토대로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이는 이후 더 나은 의약품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1.1.3. 불로불사약에 대한 노력
불로불사약에 대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관심사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죽음을 극복하고자 온갖 방법을 강구해왔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는 신농씨神農氏라 불리는 전설적인 제2대 황제가 수많은 독초를 섭취하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불로약을 찾기 위해 온몸을 던진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만물을 木, 火, 土, 金, 水의 다섯 가지 기본원소로 이뤄졌다고 보는 오행설이 유행했다. 이에 따라 의학 체계 또한 이 이론에 맞추어 발전해왔다. 후한~삼국시대에는 신농씨의 이름을 빌려 "신농본초경"이라는 의서를 완성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