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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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한국 사진사 개관
1.1. 한국 사진의 시작
1.1.1. 1860년대와 1870년대의 사진
1.1.2. 1880년대 이후 사진의 진정한 시작
1.2. 사진의 수용과 정착
1.2.1. 사진의 수용 과정
1.2.2. 사진의 정착과 발달
1.3. 일제강점기 시기의 사진
1.3.1. 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발전
1.3.2. 사진교육기관의 설립
1.4. 광복 이후
1.4.1. 전국 단위의 사진단체 확대
1.4.2. 아마추어 사진의 해외 진출
1.5. 6·25 전쟁 기간의 사진
1.5.1. 종군기자들의 기록 사진
1.5.2.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의 등장
1.6. 1960년대 이후의 사진
1.6.1. 사진계의 사회적 정착
1.6.2. 새로운 사진 장르의 발전
1.7. 현대 사진의 변화
1.7.1.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사진의 변화
1.7.2. 현대 사진 작품의 다양화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한국 사진사 개관
1.1. 한국 사진의 시작
1.1.1. 1860년대와 1870년대의 사진

우리나라에 사진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60년대와 1870년대 무렵이다. 이의익(李宜翼)과 그의 일행, 오경석(吳慶錫), 김기수(金基秀)와 김홍집(金弘集) 등이 중국과 일본에서 초상화 사진을 찍었다. 특히 이의익과 그의 일행이 중국에서 찍은 사진은 한국인을 모델로 한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해병대가 촬영한 사진들도 이 시기의 중요한 기록이다. 이처럼 이 시기의 사진들은 주로 외국인에 의해 한국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촬영된 것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직접 사진을 찍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 진정한 사진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1.2. 1880년대 이후 사진의 진정한 시작

1880년대 이후 사진의 진정한 시작은 지운영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지운영은 개항기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워와서 1883년 무렵 한성부에 사진관을 개업하고 영업했다. 지운영은 1884년 3월 16일, 고종의 어진(御眞)을 촬영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통리외무아문의 주사로서 일본을 드나들면서 남보다 먼저 새로운 문물에 접했다. 그는 천부적인 예술적인 소질뿐만 아니라 건장한 체구와 기민성, 그리고 큰 담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구파와 개화파의 싸움에 잘못 휘말려 김옥균을 암살하는데 실패하였고 비운의 일생을 마침으로써 사진의 맥은 중도에서 끊기고 말았다.


1.2. 사진의 수용과 정착
1.2.1. 사진의 수용 과정

한국 사진의 수용 과정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외국과의 통상과정에서 사진이 전래되거나 서양 제국주의의 강제 통상조약에 의해 사진이 들어오지 않고 예견치 않은 사건으로부터 이루어졌다. 한국 최초의 사진수용은 중국의 사진수용에 비해 20년이나 늦은 1860년대에 가능하게 된다. 그 원인들 중 가장 큰 이유로는 중국 아편전쟁 이후 더욱 강경했던 천주교 박해와 외국 문물에 대한 쇄국 정책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중국에서 아편전쟁이 일어난 1842년 이후 30년간 조선이 지향한 쇄국정책, 특히 서양 문물에 대한 배타적 정책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서양 문물을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인 사진은 그 당시 개인이 소지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처벌 대상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도 한국 최초의 사진은 1860년대 외국인에 의해 촬영된 것들로 역사적 사건과 종교적 기록에 관계되어 있다.


1.2.2. 사진의 정착과 발달

영업사진이 한국 사진의 초창기의 길을 맨 먼저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생겨났으며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각축전이 일본의 승리로 돌아가자 일본문화가 물밀 듯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 영업사진사들이 각지에 사진관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들로부터 사진을 배운 한국인들이 독립해서 사진관을 내게 됨으로써 전국적으로 사진관의 수가 차츰 늘어갔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에는 일제의 식민정책하에서 일본인들이 상권을 독차지한 영업사진계에서도 한국 나름의 발판이 형성되게 되었다. 1926년에는 한국인들만으로 뭉쳐진 경성사진사협회가 결성되게 되어 회원들 사이의 친목과 아울러 사진예술의 창작의욕을 북돋는 한편, 질적인 향상을 꾀하게 되었다. 초창기 사진의 기반이 이 정도로 다져지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한 것은 1910년 설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학교 사진과의 사진교육이었다. 미국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온 최창근이 강의를 맡았고, 1927년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한 신낙균이 후에 뒤를 이은 이 교육기관은 1935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25년 동안 800명 남짓한 사진사를 배출하여 우리나라에서 사진의 기반이 다져지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는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게 과학적인 신기함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정도의 사진이 그런 대로 영업사진관의 운영을 가능하게 하였...


참고 자료

[경기신문] [창룡문] 66년 만의 ‘인증샷’(2014.02.02)
[SBS뉴스] 화폭 위의 '근대 예술혼'…근대서화의 재발견_이정국 기자(2009.01.06.)
[중앙일보] 110년 전 여행가 비숍이 본 조선 “푹 썩었지만 시민사회 가능성도”_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한겨레신문] 한국인이 찍은 가장 오래된 고종 초상사진 찾았다_노형석 기자(2015.10.05)
[포토채널] 1920년대에 쓴 최초의 사진학_신낙균
[월간조선 뉴스룸] 사진으로 보는 광복 70주년 그날의 기록들_그날, 우리는 38도 선 이북에서든 이남에서든 똑같이 기뻐했다_김성동 기자
[서울문화투데이] 여성으로 짚어보는 한국사진사, SeMA 《한국여성사진사Ⅰ: 1980년대 여성사진운동》_이지완 기자(2021.06.3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6512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01210/33198896/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143259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204503&cid=51267&categoryId=51267
한국사진작가협회 (pask.net)
https://blog.naver.com/chatelain/221419772118
https://blog.naver.com/brainstom7/222409615302
한국 전쟁기 한국사진가의 사진사적 위상 – 김상미 순천향 인문과학 논총 제 27집
한국 근대기 예술사진의 전개와 사진공모전의 정착, 조선사진전람회를 중심으로 – 김현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7. 12
한국 근대 사진교육사 연구 : 1910-1945 이경민 /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이경률, 「한국 최초의 사진에 관한 실증적 고찰」, (비교문화연구 제 56집, 2019.9, p281~314)
김상미, 「한국전쟁기 한국사진가의 사진사적 위상」,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27집, 2010년, p435~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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