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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1.1. 청나라의 역사
청나라는 중국 대륙의 마지막 왕조로, 1616년부터 1912년까지 지속되었다.
청나라는 1616년 여진족의 지도자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여 후금국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1636년 태종 때 국호를 대청으로 개칭하였다.
명나라가 멸망하는 틈을 타서 중국에 침입한 청나라는 순치~강희 연간에 명나라의 유족, 삼번의 난, 대만의 정씨 등을 평정하고 전국 지배에 성공하였다.
강희, 옹정, 건륭의 3대 130여 년간의 전성기에는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여러 제도의 정비, 대규모의 편찬 사업을 추진하여 학술을 장려하는 한편 사상 통제에 의한 '문자의 옥'을 치르고 변발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건륭 말기부터 정치가 부패하고 군사력의 근간인 팔기병의 실력이 저하되었다. 또한 사회 모순도 깊어져 백련교의 난 등이 발발하고, 아편 전쟁을 기화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아 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이로써 점차 혁명 운동이 고양되어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이듬해 선통제의 퇴위로 멸망하였다.
청나라가 200년 이상 중국 전체를 통치하는 데 성공한 비결로는 만주족의 정체성 유지에 기여한 팔기 제도가 가장 중요했다.
1.2.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청나라는 '키메라의 제국'이라 불리는데, 이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복잡한 제국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청나라는 만주족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몽골, 한족, 조선인, 러시아인, 위구르족, 티벳 족 등 다양한 민족이 참여하여 형성된 다민족 제국이었다.
이러한 청나라의 다민족 구성은 팔기 제도를 통해 유지되었다. 팔기는 8개의 깃발부대로 이루어진 군사조직이었는데, 만주족 외에도 몽골족, 한족, 조선인, 러시아인, 위구르족, 티벳 족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청나라는 팔기 제도를 통해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팔기 제도의 핵심은 '격리'와 '본속주의'였다. 팔기의 만주족들은 중국 본토에 이주한 뒤에도 원주민인 한족과 따로 살았으며, 만주족, 한족, 몽골, 티베트, 위구르족 등 각 민족에 고유의 풍속, 법률, 제도를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청나라는 중국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중국에 대한 동화를 의식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청나라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키메라의 제국'이었지만, 팔기 제도를 통해 이들을 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