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철학의이해: 고대 그리스 아테네 정치 요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
1.1. 아테네 민주주의 성립과정과 현대적 함의
1.2. 아테네 민주제도의 구성
1.2.1. 시민법정
1.2.2. 평의회와 민회
1.3. 아테네 민주주의와 심의민주주의
1.4. 아테네 민주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2.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사회
2.1.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
2.1.1. 생산과정과 환경 문제 발생
2.1.2. 환경 불평등의 발생 기제
2.2. 소비사회에 대한 반성
2.2.1.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2.2.2. 과시에 의한 소비
2.2.3. 과잉 소유
2.2.4. 중독에 의한 소비
2.2.5. 광고에 의해 조작된 소비
2.3. 생태적 삶의 실천
2.3.1. 생태계 위기의 현 실태
2.3.2.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
2.3.3. 생물 다양성 감소와 멸종
2.3.4. 폐기물의 증가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
1.1. 아테네 민주주의 성립과정과 현대적 함의
민주주의의 기원은 기원전 500년경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비서구 사회에서는 인도, 근동, 중국 등에서 종교적 사상들이 발전하고 있었던 반면, 아테네에서는 종교적 신과는 무관한 '시민(市民)'이라는 개념과 '공공선(公共善)'이라는 개념의 정치적 사상을 기반으로 민주주의가 태어났다.
수많은 그리스의 폴리스 중에서 유독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발생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화폐경제의 발달이다. 당시 이오니아 지방에서 발전한 화폐경제가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에 침투했는데, 반면 아테네는 농업에 종사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채무 노예로 전락하면서 아테네는 심각한 군사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둘째, 평민층의 정치참여 의지 증대이다. 기원전 7세기 후반 평민들의 향상된 경제력과 군사적 역할의 확대는 정치참여의 의지로 이어졌고, 귀족세력과 평민들의 갈등 과정에서 참주정이 출현하게 되면서 아테네가 정치적 개혁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준 것은 솔론의 개혁이었다. 기원전 594년 솔론은 부자와 빈자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채탕감과 채무노예 해방 정책을 실행하여 공공선을 실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는 시민을 재산 정도에 따라 4계급으로 분류하여 정치적 권리를 차등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귀족들의 정치권력 독점을 타파하였다. 이러한 솔론의 개혁은 아테네 민주정치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 후 기원전 6세기 말 클레이스테네스는 솔론의 개혁 이후 발생한 참주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도편추방제를 도입하고, 전국을 30개의 지구로 나누어 10부족제를 만들었다. 또한 400인 평의회를 500인 평의회로 확대하여 더 많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그는 기원전 451년 부모가 모두 아테네 시민인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모든 성인 남자에게 공직 참여의 기회를 부여했다. 이로써 시민에 대한 정치적 참여의 평등이 이루어졌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는 자유와 평등에 있다. 법적 평등인 이소노미아와 연설의 평등인 이세고리아 개념이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확립되었고, 시민 누구나 민회에 참여하여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 담론이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정치적 자유와 평등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1.2. 아테네 민주제도의 구성
1.2.1. 시민법정
시민법정은 아테네의 민주정이 정립되어 일반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확대되며, 주권자로서의 지위가 확정되어 가는 흐름 속에서 발생한 제도이다. 시민법정의 형성과정과 기능, 운영방식 등을 차례로 고찰하면서 아테네 민주정의 정치구조와 법체계상 시민법정이 구체적인 사안을 해결하는 최후의 시민 대표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에서의 사법기관은 솔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 기능은 다른 고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왕으로 대표되는 행정관과 귀족들에 있었다. 특히 이들이 중추를 이루던 아레오파고스 회의에 재판권이 놓여졌다. 기원전 6세기경 솔론은 아레오파고스 회의에 부여되었던 재판권을 '헬리아이아(Heliaia)'라는 기관에 인도하였다. 이 기관에는 폴리스 최하위 계층의 참여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재판권은 민중에 놓이게 되었다.
본래 기원전 594년에 있었던 솔론의 개혁은 아르콘의 판결에 불복할 경우 법정의 자격으로 소집되는 민회에 항소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었지만, 시민전체가 소집되는 민회의 거추장스러운 면을 인지하여 민회로부터 독립된, 그러나 그 구성원들을 어떤 식으로든 전체 시민단으로 부터 선출하는 법정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솔론의 개혁에 의한 헬리아이아가 시민법정(Dikasteria)의 기원으로 민중의사법 참여의 가능성이 발생했다면 그 완성에는 에피알테스의 개혁이 있었다.
기원전 462년 에피알테스 사법 절차 개혁의 중심 내용은 이전에는 불만을 가진 소송당사자의재량에 맡겨져 있던 상급법정에의 항소가 자동적인 것이 되게 함으로써 상고법정이 이제는 일심법원이 된 것이다. 즉 시민법정이 최종심으로 아테네인의 재판은 단심제인 것이다. 그리하여 아레오파고스의 아르콘들은 더 이상 평결을 내리지 않았고, 다만 증언을 청취하고 관련법규를 인용하는 예비심리만을 주재하게 되었으며 예비심리 뒤에는 사안 일체가 봉인되어 법정에 송치되었다. 이제 아르콘은 법정을 주재하기는 하였고 재판의 진행에는 실질적 참여를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민중은 평의회로부터 사형, 구금, 벌금을 부과하는 권한을 박탈하였고, 평의회가 유죄를 선고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려면 반드시 법정에서 판결이나 벌금을 선고하고 배심원들의 결정이 해당 사건의 최종 판결이 되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재판과정의 개혁으로 인한 소송의 증가는 새로운 법정의 필요성 증가로 이어져 결국 시민법정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2. 평의회와 민회
평의회와 민회는 아테네 민주정의 핵심 기관이었다. 평의회는 대체로 존재했으며, 민회는 보다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최종 인준을 하는 역할을 했다. 평의회의 권한은 민회보다 컸는데, 평의회가 민회에 상정할 의제를 준비하고 민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평의회는 아테네 민주정의 실질적인 통치 기구였다. 솔론의 개혁 이후 등장한 400인 평의회는 아레오파고스 회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후에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500인 평의회로 확대되었는데, 이들은 10개 부족에서 추첨에 의해 선출되었다. 평의회 의원들은 대부분의 행정 부처를 담당했고, 기소권과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민회에 상정할 의제를 준비하고, 민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집행하는 등 민회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했다.
한편 민회는 민주정의 최고 의결기구였다. 민회에는 성인 남성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다. 민회는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전쟁과 외교 문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민회의 권한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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