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문헌에 나타난 동북관
- 최초 등록일
- 2014.05.24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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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의 제기
2. 북적에서 동이로
3. 삼방의 이적과 다른 이적
4. 중국인이 발전시킨 ‘동이’
5. 신속을 포기할 수 없는 군현의 고지
6. 조선에서 조선으로, 동원의 분과 합
7. 맺음말
본문내용
1. 문제의 제기
현재 중국의 ‘동북’은 일반적으로 중국 영토로 공인된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 3성을 지칭한다. 그러나 역사상 중국 왕조의 ‘동북’은 시대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 최대 범위는 하북성 동북부, 내몽고 동부, 만주와 한반도 및 일본열도까지 포괄한 광대한 지역이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중국 왕조는 은주시대 이래 사방 민족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동북’의 여러 민족과 국가들에 관해서도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사기>>를 비롯한 역대 정사와 기타 문헌들은 주변 민족에 대한 보다 풍부하고 체계적인 기록의 담당자를 자임했다. 그러나 특히 중국인의 전통적인 천하관과 화이사상에 의해 진상이 크게 왜곡되었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들은 자체의 기록을 갖지 못했던 주변 민족들의 초기 역사에 관한 ‘유일한 문헌자료’로서 이용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주변 민족들이 독자적인 사서를 편찬할 때도 중국 측 기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고, 이것이 다시 중국 측에 전달되어 그 왜곡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이 형성된 전통적인 ‘동북관’이 현재까지 은연중 계승되고 있는 예도 드물지 않은 것 같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 중국이 전통적인 천하관과 화이관에 입각한 ‘동북’관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경향이다. 동북공정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만약 요동과 만주에서 활약하였던 고조선‧부여‧고구려‧말갈‧발해 등의 역사를 모두 중국 소수 민족의 역사로서 ‘중화민족’ 대역사의 일부로 편입될 경우, 한국사란 중국에 동화‧흡수된 중국 소수 민족 중 흡수되지 않은 지류사이며, 따라서 ‘중화문명’에 참여하지 못해 야만 또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집단의 역사에 불과하다는 관점도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2. 북적에서 동이로
예기 왕제편은 중국의 동서남북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각각 이‧융‧만‧적으로 칭했다. 그러나 이 명칭들은 모두 처음에는 특정한 집단의 전칭에서 그 방면 이민족에 대한 범칭으로 확대되었으며, 특히 ‘이’는 ‘만’ 또는 ‘적’과 연칭되어 이민족 전체의 범칭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 단독으로 이민족 전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