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시집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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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집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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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황지우의 첫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1980년대 대다수의 시인들이 그랬듯, 황지우 역시 ‘광주 민주화 항쟁의 체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그의 시적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은 ‘광주’라는 충격적인 체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캔버스 밖 백색 벽 위에까지, 火急하게
지나간 듯한 정글화 자국들이
수십, 수백, 수천의 拇印들처럼
찍혀, 있다 마치, 그 길은
끝끝내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길이었다는 듯이

「흔적Ⅲ·1980(5.18×5.27㎝) 李暎浩 作」 부분


이 시의 제목에 주목해 보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시의 내용이 이영호 작의 그림 설명이 아니라, 전투화의 자국들로 가득 찬 1980년 광주의 흔적을 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는 초토입니다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

파리는 파리 목숨입니다

이제 울음 소리도 없습니다

파리 여러분!

이 향기 속의 살기에 유의하시압!

초토는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에프킬라를 뿌림으로서 현실은 황폐해진다. 하지만 에프킬라는 뿌려진다. 현실에서의 전망이 파탄 난 세계에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라는 외침만이 남는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이 폭력에 의해 무참히 좌절되어 버린 광주의 체험은 황지우의 시에서 ‘부정’과 ‘절망’으로 표현된다.
황지우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시적인 것’으로 공인해온 어떤 인식을 깨뜨리는 장치를 시집 곳곳에 풀어놓았다.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한 자신의 메시지를 어떠한 방법으로 세상에 말할 것인가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다 시의 형태파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황지우 시집의 첫머리에 이러한 그의 글이 실려 있다.


나는 내가 쓴 詩를 두번 다시 보기 싫다. 혐오감이 난다. 누가 시를 위해 순교할 수 있을까? 나는 시를 불신했고 모독했다. 사진과 상형문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아 그리니까 나는 시가, 떨고 있는 바늘이 그리는 그래프라는 것을 波動力學이라는 것을, 독자께서 알아주시라고 얼마나 시의 길을 잃어버리려고 했던가. 죄송합니다.

「自 序」 전문


황지우는 시의 형태를 파괴하면서, 시의 순수한 문학성과 예술성에 반하는 시도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황지우는 고민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 방법을 선택하였고 그러한 수법을 통한 메시지 전달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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