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사학자들
- 최초 등록일
- 2008.04.30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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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채호와 박은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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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민족주의 사학의 양대산맥 신채호와 박은식
백암 박은식과 단재 신채호는, 우리의 역사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근대화시킨 인물들이다. 그들은 기존의 전통적 사관(유교중심의 사관)으로부터 탈피하여 탈중화적 민족사를 정리했음은 물론, 일제의 침략사관(식민사관)에 대항하여 자주적 민족사관을 확립했다. 특히 이들은 유교의 실증적인 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도가(道家: 신교 · 선교 · 선도)의 자주 사상을 토대로 정신과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사학적 방법론에 의해 민족사학의 지평을 개척했다. 백암의 한국통사 · 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단재의 조선상고사 · 조선상고문화사 등이 그러한 가치의 완성체인 것이다.
백암은 전통유교기와 개량유교기, 그리고 대종교영향기를 거치면서 그의 민족주의사학을 성숙시킨다. 역사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전통유교기와 개량유교기에 보여 주었던 백암의 가치는 공자의 춘추사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시기 백암의 역사인식 또한 `단군-기자`를 함께 엮어 이해하려는 중화사관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토대로 자리잡은 정신은, `공부자의 도(유교)`임을 확신했던 백암이었다. 따라서 이 당시 그가 보여 준 유교구신운동이나 양명학운동, 그리고 대동교(大同敎) 창건 등의 활동은 고루한 유학자 또는 개혁유학자의 정신으로 행동화되는 것이다.
백암이 그의 역사정신의 핵인 국혼(國魂)을 찾게 되는 계기는, 고신교(古神敎)의 부활인 대종교를 경험하면서다. 이 시기에 와서 박은식은, 앞서 드러냈던 중화주의적 가치에 대한 단절을 선언하고 천여 년을 이어 온 중화노예로서의 역사를 회개 · 통곡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당대의 유생들을 세상을 기만하는 도둑으로 매도하고 공자를 화인(華人)으로 단정하면서 공자의 가르침에 앞서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의리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또한 단군신교(檀君神敎)를 진정한 국교의 가치가 있음을 천명하고, 국사와 더불어 종교(국교)의 가치를 국혼의 핵심으로 내세움을 볼 때, 그의 민족사 근저에 흐르는 정신사관 내지는 문화사관의 본류가 무엇인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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