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화사상
- 최초 등록일
- 2009.11.28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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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개 한국의 개화사상을 사상사적인 면을 중심으로 리포트 형식으로 작성한 글
목차
한국의 근대 개화사상
1. 들어가기
2. 초기 개화파의 태동 : 박규수
3. 개화파의 분화과정
4. 변법 개화파
5. 시무개화파
6. 개화사상의 발전
(1) 제1단계 : 갑신정변(甲申政變)
(2) 제2단계 : 독립협회 운동
(3) 애국 계몽 운동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초기 개화파의 태동 : 박규수
개화사상은 사상적으로 18세기 후반 실학자들인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北學派) 사상과 19세기 중엽 김정희, 이규경, 최한기의 사상과 이어지고 있다. 이같이 개화사상은 그 원형을 실학사상 중 북학파의 사상을 주로 계승하였다. 실학과 개화사상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인물로서 초기 개화파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인물은 박규수(朴珪壽)이다. 그는 오경석, 유홍기 등과 함께 개국을 주장하고 서양식 화포와 화륜선의 수용을 주장함으로써 최초의 개화사상가가 되었다. 당시 오경석과 유홍기는 중인 신분의 역관과 한의사였으므로 양반 자제들을 선발하여 교육시킬 수 있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었다. 개화사상가 세 사람 중에서 양반 신분은 박규수뿐이었다. 박규수는 북학파 실학자인 박지원의 손자로 조부의 실학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개화사상을 형성한 무렵에는 이미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지위에 있었다.
그는 노론계열의 북촌 양반 자제들 중에서 영민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자신의 사랑방에서 1870년대 초를 전후하여 개화사상의 본격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들은 주로 박지원의 (燕巖集)이나 중국의 위원이 쓴 (海國圖志) 등을 함께 읽고 시무를 토론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유길준 등과 같은 개화 사상가들을 양성할 수 있었다. 박규수 사후에도 오경석 및 유홍기의 지도아래 개화파들은 그 사상적 결속을 굳혀 나갔다.
3. 개화파의 분화과정
개화파는 개항 후 개화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중에 1881년(고종 18)까지는 수구파인 위정척사파의 공격에 대응하기에도 힘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아직 개화파 내부의 분화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갈등은 주로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참고 자료
1. 최영,《근대 한국의 지식인과 그 사상》, 문학과지성사, 1997.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3. 조현규,《한국의 윤리사상》, 중문, 2001.
4. 이투스 국사팀,《누드 교과서 국사》, 이투스, 2006.
5. 박천욱,《교과서보다 쉬운 독학국사》, 일빛,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