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화사상
- 최초 등록일
- 2020.03.11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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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개화사상
목차
1.머리말
2.개화파의 형성
3.개화파의 개혁정신
4.초기개화론자 박규수
5.급진개화파
6.맺음말
본문내용
5.급진개화파
박규수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홍기의 사상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박규수 사후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의 양반 자제들은 유홍기의 지도를 받으면서 개화의 프로그램을 가지게 된다. 중인층의 사고, 그리고 유교를 탈피한 불교사상이 사회 개혁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이렇게 추측의 형태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유홍기의 저술이 남아 있지 않고 개화파 인물들이 남긴 그에 대한 글도 매우 적다는데 이유가 있다. 이러한 개화사상의 성숙은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 박영효에게서 나타난다. 이들의 개화사상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고 여기에서는 동도서기의 개화에서 성숙한 개화의 방향으로 가게 된 개화파의 형성시기에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원인과 각각의 대안을 검토해 보겠다.
수구당, 또는 사대당이라 일컬어지는 온건 개화파도 역시 박규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김홍집, 김윤식, 유길준 등과 집권세력인 어윤중 등은 개항 이후의 민씨정권하의 개화에 그리고 갑오경장기의 조선의 전체적 개혁에 나름대로의 개화관을 가지고 참여했다. 김홍집은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조선책략>을 가져 왔고 갑오개혁시 여러 번의 총리 대신으로 조선의 전반적 개혁을 주도했다.
참고 자료
<개화파의 대외인식>, 김봉렬
<개화파와 개화 사상 연구>, <개화당 연구>, 이광린
<고쳐 쓴 한국 근대사>, 강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