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사상과 위정척사
- 최초 등록일
- 2020.11.14
- 최종 저작일
-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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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화사상과 위정척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사상의 형성 배경
Ⅲ. 개화파
Ⅳ. 위정척사파
Ⅴ. 결론
Ⅵ.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19세기 조선 사회는 개항을 통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사회 모순이 격화되어 혼란기인 가운데, 외부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세력들이 시시각각 압박해오고 있었다. 이에 조선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개항하여 외국과 통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의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개항의 여파로 조선은 크게 두 가지의 세력으로 나뉘게 된다. 개항을 통해 적극적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여 근대적 개혁을 통해 발전을 이루고자 한 개화파와 기존의 사회질서를 고수하며 제국주의 세력에 맞선 위정척사파가 바로 그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개항을 통해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과제였고,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과정에서 자주국의 위치를 지키면서 타국과 경쟁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 주도 세력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 시키고자 갈등을 일으켰으며, 여러 판단 오류를 통해 소중한 1년, 2년을 낭비했다. 그 결과 국가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들이 각각 다른 사상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던 원인을 규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사상이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후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Ⅱ. 사상의 형성 배경
개항 이전의 조선은 성리학의 국가였다. 성리학이 곧 정치 이념이자 사회 질서였다. 그 질서 아래서 사(士) 와 농(農)을 우대하며, 공(工)과 상(商)을 천시한 사상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농본주의에 입각한 질서 속에서 물건을 만드는 장인을 박대하고, 물건을 파는 상인을 천시했다. 이러한 사회질서는 국가 정책으로도 이어져 대외무역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이런 정책은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국내 상공업의 발전을 억제하기 위함이며, 외국의 문물이 국내로 유입되어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생각에서 기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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